‘15년 해외도피’ 탁신, 측근이 총리된 날 사면 노린 귀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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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前총리 징역 8년형 교도소行
수갑 안차… 도착-수감과정 생중계
지지자 수천명 몰려들어 환호성
탁신계 세타, 군부 손잡고 총리 등극

2001년부터 5년 동안 집권한 뒤 지금까지도 열광적 지지층과 반대파를 동시에 보유해 ‘아시아 최고의 논쟁적 정치인’으로 꼽히는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74)가 22일 15년 만에 해외 망명 생활을 마치고 전격 귀국했다.

탁신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고 2008년 부정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해외로 도피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을 전전했고 수차례 귀국설이 제기됐음에도 실제 귀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딸 패통탄이 이끄는 친(親)탁신계 정당 프아타이당의 집권이 유력해지자 사면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귀국을 단행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방콕 끌롱쁘렘 중앙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날 의회에서는 탁신과 가까운 부동산 재벌이며 프아타이당이 추대한 세타 타위신(60)이 총리로 선출됐다. 프아타이당은 올 5월 하원 500석을 뽑는 총선에서 징병제 폐지, 왕실모독제 형량 완화 등 군부가 싫어하는 공약을 내건 전진당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상원 250석을 모두 차지한 군부의 반대로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총리에 오르지 못하자 프아타이당은 군부와 손잡고 집권에 성공했다.

탁신 전 총리가 노리는 바가 여기에 있다. 프아타이당과 군부 간 연정 협상에는 그의 사면도 포함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그러나 5월 총선에서 태국 국민들은 군부와 탁신계 정당 모두 기득권 세력으로 보고 심판했던 만큼 정치 대립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탁신 지지자 ‘레드 셔츠’ 물결
타이PBS방송 등에 따르면 개인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를 출발한 탁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9시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패통탄 등 가족과 함께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이후 국왕 라마 10세의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지지층에게는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당초 경찰은 귀국과 동시에 탁신을 체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수갑을 차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탁신은 경찰 조사 이후 대법원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고 교도소로 이송됐다. 그는 미얀마에 대한 정부 대출의 불법 승인, 통신사 주식 불법 보유, 디지털 복권 발행 비리, 국유지 헐값 매입 등 4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수감이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귀국한 것을 두고 사면 확신에 따른 일종의 ‘정치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거의 모든 언론은 그의 도착 및 수감 과정을 생중계했다. 공항, 대법원, 감옥 인근 등 그가 가는 곳마다 이른바 ‘레드 셔츠’로 불리는 탁신 지지자 등 수천 명이 몰려 그의 귀국을 반겼다. 2010년 친탁신파와 반탁신파의 대립으로 최소 90여 명이 숨진 유혈 충돌이 발생했을 때 탁신 지지자는 프롤레타리아를 상징하는 빨간 옷, 탁신 반대파는 왕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어 각각 ‘레드 셔츠’, ‘옐로 셔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 딸 패통탄 이끄는 정당-군부 공동 집권
이날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상·하원 합동 총리 인준 투표에서는 세타 후보가 총리로 선출됐다. 세타는 재적 의원 747석 가운데 오후 6시 현재 483표를 얻어 과반 득표에 성공했다. 태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산시리의 전 회장으로, 5월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 입문했다.

프아타이당은 집권을 위해 루암타이상찻당, 팔랑쁘라차랏당 등 군부계 정당 2곳과 손을 잡았다. 프아타이당은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진당을 연정에서 배제하고, 왕실모독죄 개헌 또한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탁신계 정당과 군부계 정당이 ‘공동 집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 언론은 탁신 전 총리가 귀국을 위해 군부와 사면에 관한 일종의 거래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신을 실각시킨 군부와 자신의 사면을 위해 다시 손을 잡은 격이다. 태국법은 70세 이상 국민이나 그의 가족이 왕실을 통한 사면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영국 BBC는 교도소 측을 인용해 “탁신 전 총리가 즉시 왕실에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면까지 과정이 한두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상의 ‘셀프 사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상당하다. 20일 방콕포스트가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4.5%가 “프아타이당과 군부 정당의 연정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15년 해외도피#탁신 친나왓#사면 노린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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