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그만!”…우크라 피란민들이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3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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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소녀 소피아의 메시지 ‘전쟁은 그만!’
7세 소녀 소피아의 메시지 ‘전쟁은 그만!’
“전쟁은 그만!!!(Ні війні!!!)”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 기차역에서 만난 소피아 양(7)이 A4용지에 천천히 한 자 한 자 눌러쓴 메시지다. 우크라이나 중부도시 폴타바에서 살던 소피아 양은 러시아군 침공을 피해 9일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그녀에 목에는 큰 헤드셋이 걸려있었다. 피난 중 들려온 포격 소리에 대한 공포를 막기 위해서다. 충격 때문인지 ‘국경을 넘을 때부터 말도 하지 않는다’며 마리아나 씨(35)는 딸을 걱정했다.

이어 마리아나 씨는 “이건 전쟁이 아니라 테러리즘”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던 소피아 양은 ‘펜을 달라’고 기자에서 손짓을 한 후 종이에 ‘전쟁은 그만’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이 제 소원이에요.”
● 우크라이나인들이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0일까지 2주간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지대에서 약 30여명의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국경 일대에서 만난 대부분 피란민들은 전쟁의 고통과 피란의 피곤함에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일부 피란민들은 “전쟁의 참상과 우리들의 소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언론과의 대화에 적극 나섰다. 자신의 메시지를 A4용지에 적어 보도해달라고 부탁하는 피란민들도 있었다.

8세 소년 예고르 ‘평화를 원해요’
8세 소년 예고르 ‘평화를 원해요’

폴란드 국경 기차역에서 만난 예고르 군(8)은 “평화를 원해요(Я хочу миру)”라고 종이에 쓴 후 같은 말을 10번 크게 외쳤다. 소년의 외침은 주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예고르 군은 러시아군의 포격을 뚫고 가족들과 함께 수도 키이우를 극적으로 탈출한 후 서부 도시 리비우를 거쳐 8일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게 싫어요”라고 말했다.

나스쟈, 이라 자매 ‘나의 하르키우 복원되길’
나스쟈, 이라 자매 ‘나의 하르키우 복원되길’

우크라이나 북동부 거점이자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피난 온 나스쟈(18), 이라(13) 남매도 러시아군 포격으로 잿더미가 된 고향의 모습을 설명하다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A4용지에 ‘나의 하르키우가 복원되길 바래요(Я хочу, чтобы мой Харьков был восстановлен)’라는 메시지를 적은 이유다. 나스쟈 씨는 “우리 도시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도시 중 하나”라며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면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하르키우 피란민 마리아 씨(41)도 ‘나는 평화를 원해요’(Хочу, щоб був мир)라는 소원을 썼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사랑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영토”라며 “내 것, 너 것으로 나누기 위한 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키이우에서 탈출해온 스타니슬라브 군(15)은 ‘집에 가고 싶어요’(Хочу додому)라고 적었다. 주변 피란민들은 단순히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힘들 때 자주 쓰는 감정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 입대 초조함에 “담배 한대 만 주세요”가 소망
피란민 이브라김 씨(37)는 자신의 소망에 대해 대뜸 ‘담배 하나 피고 싶다’고 적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돌아간다”며 “‘전쟁터에서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조국을 지키겠다’는 소망이 겹치면서 부담이 너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행 기차를 타기 위해 폴란드 국경도시 기차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군입대 세르게이 씨 “러시아 꺼져라‘
군입대 세르게이 씨 “러시아 꺼져라‘

국경검문소에서 만난 세르게이 씨(42)도 세계에 전하고픈 메시지로 ‘러시아 XX들, 우크라이나 땅에서 꺼져라’( Хай забира¤ться москаль з Укра¤нсько¤ земл¤)라는 욕설을 쓰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침공 결정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며 “우리를 건들지 말고 빨리 우크라이나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의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마지막까지 ‘사랑과 평화를 잊지말자’고 강조한 피란민들도 있었다. 하르키우에서 피란 온 베르니카 씨(20)는 A4용지에 ‘모두를 안아 줄게요’(Я об¤йму вс¤х)라고 썼다. 그는 “전쟁은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러시아, 나아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서로 안아주고 보듬으며 싸움을 멈추면 좋겠다”고 전했다.


메디카=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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