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소식 끊이지 않는 미국 앵커들… CNN 아만푸어도 투병 사실 공개[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07-27 14:00수정 2021-07-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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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유명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63)가 난소암을 진단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약 한달 동안 앵커 데스크를 비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암 투병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동안 암 진단을 받았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후속 치료가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다른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CNN 뉴스 프로그램 ‘아만푸어’에서 난소암 투병 사실을 밝힌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앵커. CNN

아만푸어를 계기로 투병 중인 또 다른 유명 언론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NBC 저녁뉴스 앵커 출신의 톰 브로커(81)입니다. 암에 맞서는 아만푸어의 선배 격인 그는 10년 가까이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multiple myeloma)’과 싸우고 있습니다.

1982년부터 2004년까지 22년 동안 ‘NBC 나이틀리 뉴스’를 진행했던 브로커는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얼굴입니다. 올해 초 60여 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는 71세였던 2013년 ‘MM’이라고 불리는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았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백혈구의 일종인 형질 세포입니다. 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화되고 증식하면서 생기는 병이 다발골수종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급증 추세입니다. 통증 없는 암은 없겠지만, 다발골수종은 특히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발골수종 커뮤니티에 따르면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고 으스러지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NBC방송의 저녁뉴스 프로그램 ‘나이틀리 뉴스’를 22년 동안 진행했던 톰 브로커 앵커. 앞서 5년간 진행했던 아침뉴스 프로그램 ‘투데이’까지 합치면 25년 넘게 NBC의 간판 앵커로 활동했다. NBC

브로커는 투병 중에도 다발골수종의 위험성과 조기 진단의 필요성, 고액의 치료비 문제 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발골수종협회 교육 동영상에도 자주 출연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교통 경찰”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몸에 밴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질 때문인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병원에 가봐라” “저런 치료제가 있다”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통증이 너무 심할 때는 의학용 마리화나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주 정부를 상대로 복잡한 마리화나 사용 법규 개선을 위한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기자 시절 주요 취재 대상이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평전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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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최근 환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서바이버닷넷과의 인터뷰에서 삶의 좌우명을 “꼿꼿하게 버티자(Stay Vertical)”라고 소개했습니다. 중병을 앓는 상황에서 정력적인 활동들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병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 싫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러커는 자신이 많은 혜택을 누리는 부유층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자신처럼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흔치 않다”는 것이죠. 앵커 직을 오래 유지했던 그는 8500만 달러(98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 질병, 특히 암 치료비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자신 같은 유명인의 역할은 고액의 치료비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2015년 발간된 톰 브로커의 자서전 ‘행운의 삶, 방해 받다. 유명 앵커로서의 삶과 언론계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함께 다발골수종 투병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아마존


2015년 발간된 브로커의 자서전 제목은 의미심장합니다. ‘행운의 삶, 방해 받다(A Lucky Life Interrupted).’ 언론인으로 승승장구해온 삶이 병으로 인해 중단됐다는 뜻이겠죠. 다발골수종을 진단 받고 2년 뒤에 나온 자서전이라 그런지 이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느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극도의 심리적 혼란을 겪은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브로커는 병이 알려지면 쏟아지게 될 동정의 눈길이 싫어 끝까지 함구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부인이 대소변 처리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소변 배출도 쉽지 않아 엉거주춤한 채로 오래 유지하고 있어야 해 브로커 부부는 “태극권 기공 소변 자세(Tai Chi Pee)”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한다고 합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에피소드를 자서전에서 가장 가슴 울컥하는 장면으로 꼽았습니다.


1980~90년대 브로커와 함께 앵커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ABC 월드뉴스 투나잇‘의 피터 제닝스. 2005년 마지막 방송에서 폐암 투병 사실을 밝힌 그는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ABC뉴스

미국 방송계에는 ‘묘한 우연’이 있습니다. 브로커나 아만푸어 외에도 뉴스 진행자들의 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난해에는 NBC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의 기상 앵커인 알 로커가 전립선암 진단으로 방송을 중단했다가 최근 복귀했습니다. 2012년에는 ABC ‘굿모닝 아메리카’의 여성 앵커 로빈 로버츠가 골수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로버츠는 앞서 2005년에도 유방암을 이겨낸 전력이 있습니다. 2013년 ABC의 또 다른 여성 앵커 에이미 로박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성공적인 치료를 받은 뒤 지금은 시사 프로그램 ‘20/20’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NBC ‘투데이’를 오래 진행했던 브라이언 검블은 2009년 폐암을 이겨냈습니다. 2005에는 브로커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ABC 월드뉴스 투나잇’의 앵커 피터 제닝스가 폐암으로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이 정도로 많다보니 ‘앵커직과 암 발병 사이에 관계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하지만 전문가들은 ‘TV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TV 화면에서 자주 접하는 앵커들에게 친근함과 신뢰감을 느끼고, 그들의 암 소식에 더 마음이 쓰이게 된다는 것이죠. 앵커를 비롯한 기자 등 언론인의 역할은 객관적 시각에서 사회 현상을 전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들 자신이 뉴스의 주인공이 돼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때도 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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