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모든 걸 결정”…‘브리트니 사태’에 유력 정치인들 나섰다[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07-20 14:00수정 2021-07-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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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빨리 멈춰야 한다.”(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다.”(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미국 여성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2003년 히트곡 ‘톡식(Toxic)’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섹시한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팝크러쉬


미국 정가에서 여성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40)가 화제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크루즈 의원과 워런 의원이 얼마 전 한 목소리로 ‘브리트니 대책’을 촉구하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브리트니 문제’를 거론합니다. 점잔 빼는 워싱턴 정치인들이 팝스타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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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스피어스를 둘러싼 여러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 ‘톡식(Toxic)’ 같은 신나는 댄스곡으로 10대 후반에 인기 정상에 오른 그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성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돌연 삭발을 하고 몸무게가 크게 느는가 하면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습니다. 2008년 아버지가 ‘후견인(conservator)’으로 지정돼 안정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려줬습니다.

1999년 귀여운 스쿨 걸 이미지의 초창기 모습(왼쪽). 첫 히트곡 ‘베이비, 원 모어 타임’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그러나 스피어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노래보다 갖가지 기행으로 더 화제가 됐다. 2007년 파파라치 사진작가들을 우산으로 위협하는 모습(오른쪽). 빌보드·롤링스톤


한물 간 팝스타 정도로 여겨졌던 ‘브릿(스피어스의 애칭)’이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지난달 법정 진술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해달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에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은 원격 비디오 증언이었지만 폭발력은 대단했습니다.

속기록에 따르면 스피어스는 30여분 동안 진술하면서 판사로부터 “제발 천천히 말하라”는 주의를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가슴 속에 맺힌 게 많은 듯 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아버지가 후견인이 된 뒤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서 불안으로 가족의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후견인이 됐지만 13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풀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스피어스(왼쪽)와 2008년부터 그녀의 후견인으로 지정된 아버지 제이미(오른쪽) US위클리


마지막에 “아버지가 나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혼할 수도 없고, 임신하지 못하도록 내 몸 속에 심어놓은 피임기구(IUD)조차 제거할 수도 없다”고 증언하는 부분이 클라이맥스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고통 받는 삶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실제 상황은 그게 아닌 듯 했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내용은 모두 아버지의 검열을 받는다고 합니다.

스피어스가 후견인 제도 때문에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들려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녀의 생활을 관리하기 위해 고용한 로펌의 직원이 한 팟캐스트 방송에 관련 내용이 담긴 오디오 파일을 전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녀의 팬들 사이에서 ’브리트니를 해방시켜라(Free Britney)‘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스피어스를 후견인 제도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리 브리트니’ 운동. CTV


올해 1월 뉴욕타임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공개되면서 팬층을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性的) 대상으로 소비되면서 정서 불안을 겪은 개인사를 담은 다큐는 스피어스 근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동정 여론에 힘을 얻은 스피어스는 소송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다큐에 이은 제2탄 격으로 아버지의 후견인 제도 악용을 고발하는 심층 기사를 실었습니다. 딸의 돈을 착복하고 자유를 말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피어스는 소송을 통해 “큰 패배, 작은 승리”를 얻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재판부는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일단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스피어스에게 변호인 선임 자격을 줬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값진 승리”라는 평이 나옵니다.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 ‘프레이밍(짜 맞추기) 브리트니 스피어스.’ 인기 스타로서 그녀가 겪은 정서 불안과 아버지가 후견인이 된 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이 스피어스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별로 도와 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견인 제도는 개인의 재정 상황과 일상 생활에 관련된 결정권을 주 정부가 지정한 후견인에게 일임하는 제도입니다. 본래 결정력이 떨어지는 고령층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제도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가 관할권을 갖습니다. 스피어스의 상황이 나아지려면 법률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녀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주는 관련 법률이 전근대적이고, 몇 차례 개혁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습니다. 현재로선 연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 청문회를 연다든지, 제도 운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워런 의원의 말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 모두 ’몰락한 스타의 극적인 재기 스토리‘는 좋아하니까요.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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