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게 복수’…아마존 CEO 전처의 남다른 기부 철학[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3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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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전처 매켄지 스콧(51)의 기부 선행이 화제입니다. 스콧은 2019년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받은 합의금(아마존 전체 주식의 4%)을 잇따라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 2년 동안 약 10조 원(85억 달러)을 기부했습니다. 지난달에는 286개 사회단체에 3조 원을 내놓았죠.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왼쪽)와 이혼 후 기부 선행을 펼치고 있는 매켄지 스콧(오른쪽). 이혼하기 전 모습이다. CNN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왼쪽)와 이혼 후 기부 선행을 펼치고 있는 매켄지 스콧(오른쪽). 이혼하기 전 모습이다. CNN

스콧이 총 세 차례에 걸쳐 통 큰 기부를 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부 전략이 있습니다. 기부금을 받는 사회단체들로부터 “게임 체인저다” “혁명적이다” 등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미 언론과 자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그녀의 독특한 기부 방식에 대해 알아볼까요.

스콧의 기부는 ‘쓰리 노(3개의 아니오)’라고 불립니다. 기존의 기부 관행과는 3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이죠. 우선 ‘비신청(No Solicitation)’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단체들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 대규모 자선재단 같은 기부자에게 신청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자선재단들은 접수된 후보들 중에서 수혜 대상을 결정해왔죠. 하지만 스콧은 “영세한 사회단체들이 신청 절차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다”며 “우리가 기부를 받을만한 곳들을 찾아내겠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스콧은 기부 자문단을 가동시켜 평판조사를 하고 후보를 물색합니다. 자문단에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현장 실무자와 기금 전문가, 자원봉사자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부금을 받을만한 사회단체의 리더십, 예산 운용 능력, 영업 실적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커뮤니티와 사회 분야를 개발합니다.

380여개 사회단체에 4조5000억 원을 내놓았던 지난해 12월 기부 때 당초 6490개 단체를 1차 후보에 올린 뒤 2차 심사 때 822개로 줄여나갔습니다. 이 중에서 438개 단체는 실적 증거 부족, 경영의 비효율성 등의 이유로 유보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선 전문가들은 스콧의 비신청 방식에 대해 “기부금을 받기 위해 치열한 로비와 뒷거래가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올해 초 스콧(오른쪽)은 시애틀 사립학교 과학교사인 댄 주엣(왼쪽)과 재혼한 것으로 밝혀졌다. CNN
올해 초 스콧(오른쪽)은 시애틀 사립학교 과학교사인 댄 주엣(왼쪽)과 재혼한 것으로 밝혀졌다. CNN

신청 과정을 없앴기 때문에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자신들이 선정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정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각양각색의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170억원을 받게 된 ‘캔디드’라는 사회단체의 대표는 선정 통보 e메일을 스팸인 줄 알고 버렸다가 나중에 제3자가 알려줘 부랴부랴 휴지통 메일들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스콧 측이 보내온 선정 통보 e메일의 낯선 주소를 보고 열어보지도 않은 곳들이 많다고 하죠. 80억 원 상당의 기부금을 받은 ‘리페어 더 월드’라는 종교단체의 대표는 이 뉴스를 전해준 스콧 측 대리인과 통화하면서 감격에 겨워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스콧은 자선재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 갑부들이 펼치는 기부 활동의 90% 정도는 자신 소유의 재단을 통해 운영됩니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대표적이죠. 스콧의 전 남편인 베이조스 아마존 CEO 역시 자신이 설립한 ‘베이조스어스펀드’에 기금을 신탁해 환경단체들에게 나눠줍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기부자 지정 펀드(DAF)’라고 하죠.

반면 스콧은 ‘비지정 펀드(Non-DAF)’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신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DAF는 체계적인 기금 운영이 가능하지만 집행 속도가 느리고, 외부인이 재단 내부 활동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비지정 방식도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콧처럼 빨리 나눠주는 것이 목표라면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근 아이다호 주에서 열린 억만장자 모임 ‘선밸리 컨퍼런스’에 이혼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여자 친구 로런 산체스(오른쪽)와 함께 등장한 베이조스 아마존 CEO.폭스뉴스
최근 아이다호 주에서 열린 억만장자 모임 ‘선밸리 컨퍼런스’에 이혼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여자 친구 로런 산체스(오른쪽)와 함께 등장한 베이조스 아마존 CEO.폭스뉴스

마지막으로 사용처 제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기부자가 사용처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는(NSA·No Strings Attached) 방식입니다. 스콧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단체들은 나중에 성과와 교훈, 사용 내역을 정리한 5쪽 미만의 보고서 제출이 유일한 조건이라고 합니다. 국제 반노예 활동기구인 ‘프리덤 펀드’의 대표는 “기부금을 가지고 다양한 모험적 시도를 하고 싶은 사회단체들에게 세세한 사용 조건은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스콧은 기부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스콧은 이 단체에 40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스콧이 운영하는 ‘미디엄’ 블로그를 보면 “나를 주목하지 말고 기부를 받게 된 묵묵히 일하는 사회단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겸손하니 좋은 평을 받지 않을 수 없죠. 반면 전 남편 베이조스 CEO의 평판은 악화 일로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던 베이조스는 지난해 첨단 대기업 CEO들의 의회 청문회 때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이미지가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3월 “‘베이조스어스펀드’에 10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재산 규모로 볼 때 “너무 적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1회분 기부 후 후속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만 미국에도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Living well is the best revenge)”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남다른 기부 철학을 실천하고, 자선 분야에서 일하는 시애틀 과학교사 출신 남성과 재혼도 한 스콧을 보면 “잘 사는 게 뭔지 알게 된다”고 미국인들은 입을 모읍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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