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 앞두고 인스타 삭제”… 美 ‘SNS 검열’에 계폭 릴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27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높아진 ‘디지털 국경’에 혼란
정확한 비자 거절 사유도 모른 채… 출국 직전 ‘날벼락’ 통보에 발 동동
ESTA까지 5년치 SNS 제출 의무화… 100만원 넘는 ‘디지털 세탁소’ 호황
유학생-주재원 등 문의 40% 늘어나… “사생활 감시하는 배타적 민주주의”
“국가 안보 위해 불가피” 논란 팽팽

《美 SNS 검열에 ‘디지털 세탁’ 확산

미국이 단기 여행자용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 때도 소셜미디어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고 예고하자, 출국 전 계정을 지우는 ‘자기 검열’이 확산하고 있다. 높아진 ‘디지털 국경’에 가로막힌 유학생의 사연을 취재했다.》


“미국 출국을 불과 이틀 앞두고, 영문도 모른 채 비자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 게시물도 아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태그된 동아리 계정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문제가 된 건 아닌지 추측할 뿐입니다.”

24일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상진(가명·21) 씨는 올 7월 미국 교환학생 비자(J-1 비자)가 거부됐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6월 비자 인터뷰 당시 “SNS 검토를 포함한 추가 심사를 거쳐 승인 여부를 통보하겠다”고 안내받았다. 그런데 미국대사관은 약 한 달 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다가, 출국 직전에 갑작스럽게 비자 거절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외교관을 꿈꾸며 해외살이를 경험해볼 기대에 부풀어 있던 김 씨는 이미 예매했던 항공권과 체류 일정은 물론이고 교환학생 과정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구체적인 거절 사유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는 “비자를 두 차례 거절당하면 향후 미국 방문이나 학업, 여행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 재신청조차 못 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생 유모 씨(22) 역시 비자 인터뷰 이후 발급 보류를 통보받아 노심초사했다. 유 씨는 “영사의 안내에 따라 비공개로 운영하던 SNS 계정을 공개로 전환한 뒤, 일주일간 추가 검토를 거쳐서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며 “출국이 임박한 상황에서 보류 통보를 받아 불안에 떨었다”고 말했다.

● ‘디지털 국경’↑… 유학생-여행객 ‘SNS 자기 검열’

국가가 개인의 온라인 기록을 입국 심사 기준으로 삼는 이른바 ‘디지털 국경’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입국 기준은 한층 엄격해지는 추세다. 현재 미국은 F(학생), M(직업훈련), J(교환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유학 희망자와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SNS 검증을 시행 중이다.

여기에 미 국무부가 10일(현지 시간) “90일 이하 단기 방문객이 비자 없이 신청할 수 있는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 시에도 최근 5년 치 SNS 기록과 생체정보 제출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올 10월 미 국무부는 9월에 피살된 미국의 강경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 사건과 관련해 SNS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외국인 6명의 비자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SNS 자기 검열’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한 대학원 식품공학과에 재학하는 정모 씨(33)는 스타트업 창업과 학술 포럼 참석 등을 위해 미국에 방문할 가능성이 커지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하고 휴대전화까지 교체했다. 그는 “과거 ‘총기 규제에 반대하던 찰리 커크가 총기에 의해 사망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취지로 했던 발언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임모 씨(25)도 커크 피살 이후 기존에 올렸던 정치적 게시글을 모두 삭제했다. 임 씨는 “당장 미국에 갈 계획은 없지만 혹시 몰라 지웠다”며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검열 대상이 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 체류 신분 유지를 위해 한국 방문 자체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이모 씨(34)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귀국하려던 계획을 접고 가족을 미국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는 “미국에서 출국했다가 SNS 문제 등으로 트집이 잡혀 다시 입국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윤모 씨(32) 역시 내년 3월 미국 신혼여행을 앞두고 노파심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글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까지 탈퇴했다. 윤 씨는 “기록이 아깝지만 신혼여행과 맞바꿀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었다”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 “일상까지 감시당하는 느낌”… 사생활 침해 논란


한편 입국 심사 과정에서의 SNS 공개 요구가 사생활 침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던 대학생 이제아 씨(21)는 미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비자 인터뷰 예약 시점부터 출국까지 SNS 계정을 사실상 강제로 공개 상태로 전환했다. 평소 위치와 얼굴, 소속 등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돼 비공개 상태를 유지했지만, 비자 심사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 씨는 “문제가 될 만한 게시물이 있는지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불편했다”며 “외국인을 모두 잠재적 위험 요소로 보는 것 같아 언짢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계정을 공개로 전환한 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팔로 요청과 메시지를 받는 등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 씨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애니메이션 관련 ‘덕질’을 주로 하는 부계정까지 함께 제출했다”며 “개인정보가 아니라도 취향과 일상이 담긴 계정을 한 나라의 정부가 특정 목적을 위해 들여다본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여행 및 유학과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정치적 성격과 무관한 계정인데도 비자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걱정된다”는 대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해외여행 사진이 많은 계정을 가진 또 다른 사례자는 “미국에 눌러앉을 거란 오해를 받을까 봐 불안하다”며 “기준이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보유한 SNS 계정을 어디까지 기재해야 하냐는 혼란도 적지 않다. 부계정을 두고 메인 계정만 적은 것이 문제가 될지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계정을 찾지 못했을 때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묻는 사례도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인스타그램, 스레드, 페이스북, X(옛 트위터)뿐 아니라 디시인사이드 계정까지 포함해 기재해야 하는지를 두고 질문이 오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SNS가 싸이월드뿐이었다는 한 유저는 ‘SNS가 없다’고 기재했다가, 서류를 확인하던 한국인 영사 직원으로부터 불이익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받아 당황했다는 경험담을 공유하기도 했다.

● SNS 기록 지우는 ‘디지털 세탁소’까지 호황

11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국 비자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미국이 유학 등 비자 심사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증을 반영하면서 유학생 등 여행객 사이에서 SNS 계정을 스스로 검열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90일 이하 단기 방문객을 위한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때도 5년 치 SNS 기록을 요구하기로 방침을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뉴시스
11일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국 비자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미국이 유학 등 비자 심사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증을 반영하면서 유학생 등 여행객 사이에서 SNS 계정을 스스로 검열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90일 이하 단기 방문객을 위한 전자여행허가(ESTA) 신청때도 5년 치 SNS 기록을 요구하기로 방침을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디지털 국경이 높아지는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2023년 7월 반간첩법 시행 이후 입출국 과정에서 휴대전화 검사와 심층 면접을 강화했다. 중국을 자주 방문한다는 한 대학생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입출국 때마다 공안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 휴대전화 검사를 받는다”며 “범죄나 정치와 무관해도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또 다른 유저도 “최근 중국 입국 당시 직원 4명에게 둘러싸여 엄격한 휴대전화와 가방 검사를 받았다”며 “무서워서 중국을 못 가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등도 중국과 유사한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과거 SNS 게시물을 전문적으로 삭제해주는 이른바 ‘디지털 세탁소’는 뜻하지 않은 호황을 맞았다. 과거에는 리벤지 포르노 등 성착취물 피해자가 주 고객이었지만, 최근에는 유학생, 주재원 등 일반인의 문의가 30∼40%가량 늘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디지털 삭제 대행업체 ‘사라짐 컴퍼니’의 최태운 대표는 “검열 강화 이후 ‘미국 출국을 앞두고 SNS 기록을 급히 정리해 달라’는 문의가 매달 한두 건씩 꾸준히 들어온다”며 “건당 100만∼200만 원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한 달여 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20대 남학생이 과거 “주한미군 철수해야 한다” “한미일 동맹 반대” 취지로 작성한 SNS 게시글 삭제를 급히 요청한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수용 기준은 각 국가의 주권에 속하는 사안이지만, 입국 심사 과정에서 SNS 검열이 과도하게 강화될 경우 민주주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SNS 검열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발언 자유까지 억압하는 조치”라며 “미국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외국인을 잠재적 위험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에 불만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가려내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효과적인 정책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돈이 많다면 킬러를 고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쏴 죽이고 싶다”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렸던 한 40대 한국인 남성이 디지털 세탁을 의뢰한 뒤 미국 출국을 시도했다가, 해당 발언이 이미 검열돼 입국이 제한된 사례도 있었다.

다만 조 교수는 “정책 비판까지 반체제·범죄로 간주할 경우 민주주의 국가가 보여야 할 관용과는 거리가 먼 배타적 민주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개인 차원에서 과도한 혐오 표현을 자제하려는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안보를 위한 디지털 장벽 강화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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