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시작되어 23일 마무리된 대통령의 업무보고 행사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낯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찍었던 사진을 돌려보다가 역대 대통령 몇 분의 ‘업무보고’ 모습을 촬영했던 기록을 발견하곤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역대 대통령의 업무보고 모습을 현장에서 취재했지만 그걸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통령의 업무보고 현장이 일반적인 대통령 행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청와대를 출입했지만 회의 전체를 볼 수 없었던 저에게도 이번 생방송은 흥미로운 콘텐츠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부산 동구 수정동 해양수산부 임시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12.23.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보통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회의의 앞부분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입장 모습과 국민의례 인사말 앞부분만 공개하고, 행정관들이 기자들을 향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희들은 행사장에서 퇴장하는 게 룰입니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와이셔츠 팔목 부분을 접고 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것도 카메라가 회의장에 존재하는 5분~10분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기자들이 퇴장한 후 대통령이 장관들을 격려했는지 호통을 쳤는지는 사후에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기자단에게 알려질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SNS와 유튜브 시대입니다. 2025년 대통령의 업무 보고 중계방송은 그런 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이고 시대 분위기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의 소통인 것은 분명합니다.
● 엄숙하고 딱딱했던 대통령 업무 보고 사진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대통령 업무 보고 사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 기억 속에 남은, 가장 강렬한 대통령 업무 보고 사진은 1980년대 초반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입니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금색 무궁화와 봉황 엠블럼 아래 놓인 커다란 의자에 앉은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채 뭔가 서류를 보고 있고, 그 옆에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설명을 통해 정부 부처 장관임을 알 수 있는 남성이 선 채로 뭔가를 말하고 있는 사진 말입니다. 그런 천편일률적인 사진이 신문의 1면 또는 2면 위쪽 잘 보이는 곳에 조그맣게 게재되어 국민들에게 강제로 전달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두환대통령이 1987년 3월 19일 오전 허문도 국토통일원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DB ● 민주화 이후, ‘움직임’을 담기 시작하다
세월이 변하면서 대통령의 사진도 변해 왔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전두환 대통령 시절까지 대통령 업무 보고는 거의 정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본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정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진은 얼마든지 동적일 수 있습니다.
박정희(업무보고) 경제기획원 / 경제기획원을 순시, 올해의 시책보고를 받고 있는 박대통령. 뒤에 최규하총리(왼쪽부터) 공화당 이효상당의장서리 유정회 백두진의장등이 앉아있다. 1978년 2월 10일 게재. 동아일보 DB아래 DB 사진을 보면, 시대별로 업무 보고 이미지가 사회변화에 적응하거나 기술 발전을 활용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등이 강조되거나, 칼라 시대 영상 시대에 적응한 대통령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 사진은 동적입니다. 주인공인 대통령의 표정은 웃고 있으며, 회의 장면 이외에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대통령과 관계자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대통령의 시선이 누군가를 바라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박수 모습이 보이면 정적인 사진도 움직임을 포함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는 사진기자와 영상기자의 센스와 테크닉이 갑자기 높아져서가 아니라 대통령실이 그렇게 세팅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21세기위원회 업무보고. 1991. 동아일보 DB대통령실이 변했던 이유는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매번 같은 대통령의 정면 얼굴과, 다른 인물이지만 늘 옆모습이나 뒷모습으로 소비되는 장관의 얼굴만으로는 더 이상 시선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사진이 부드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진 것은, 칼라 TV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볼거리가 많아지기 시작한 시점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재밌는 볼거리를 찾아 떠났고, 대통령의 홍보 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다시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시선을 끌어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업무보고의 테이블 배치도 달라졌습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습니다. 포커스는 여전히 대통령에게 맞춰지지만, 형식적으로나마 권력 관계를 수평에 가깝게 배치하려는 시도일 겁니다. 업무보고 이미지는 이렇게 사회 변화에 적응해 왔습니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2002년 4월 1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에게 2002년도 공정위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7년 3월 22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노무현대통령이 김우식 장관으로 부터 참석자들의 소개를 받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동아일보DB
국가보훈처 업무보고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1월 4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국가보훈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DB ● 대통령 사진 영상의 변화
2025년 대통령 사진과 영상의 변화는 이미 예견되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치러진 대선의 출정식조차 유튜브로 진행했습니다. 민주화 관련 광장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등 상징물 앞에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던 최근 30년간의 이미지 정치에서 버전 업 한 것이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중계와 편집을 거치지 않고, 톤과 리듬, 메시지의 배치를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행정안전부(경찰청, 소방청)·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 참석해 있다. 2025.12.17 대통령실 제공 이번 업무보고 생중계 일정 막판에 “10분 30초로 보는 잼플릭스”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12월 21일 업로드 되었는데 6만 명이 조회하고 1만 2천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국무회의와 부처 업무보고를 대통령실이 (기자단과 별개로)자체 촬영 후 편집해, 구독자 186만 명의 유튜브 채널 이재명 TV에 올린 영상입니다. 짧은 러닝타임, 음악의 적극적 사용, 흑백 톤과 컬러의 교차, 빠른 컷 전환은 모두 소셜 미디어 환경에 맞춰 설계된 시각적 장치일 겁니다. 정치가 뮤직비디오의 기법을 활용하는 것은 전 세계 추세일 것이기 때문이 이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시대에 맞춰 형식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정치 영상이 ‘개인화’ 되고, ‘재미있어지려는 순간’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면 다음 영상 제작자는 자극적이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 방향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자극이 약해지는 순간 관심은 다른 화면으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쪽이 부각되면 한쪽이 배제되는 게 영상입니다. 대통령의 질책이 어떤 기준으로 선택되고 강조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문제의 책임자들에 대한 점검은 느슨했다고 생각합니다. 환율, 부동산, 선거관리 시스템처럼 숫자로 기억돼야 할 정치는 화면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제가 구축해 버린 알고리즘 탓인지도 점검해 보겠습니다.
동시에 공직 사회 전반에 새로운 부담을 안길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영상 노출은 투명성을 확보하게 하는 한편, 실무자들에게는 이에 대한 준비와 긴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고된 숙제가 있다면 인력과 시간 투입으로 준비하는 관료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세금과 효율의 두 기준 속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입니다.
● 이미지 시대의 도래와 정치의 파워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분명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상시대가 왔다고 해서 영상을 제작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것은 아닙니다. 이미지 생산 과정이 쉬워지고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대체 가능한 영역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이제 신문과 방송국 소속의 카메라 대신, 직접 고용한 촬영 인력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사진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제가 처음 텍스트를 다루게 된 계기는 북한 사진 읽기였습니다. 2003년부터 북한 노동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을 분석했고, 그 작업은 두 권의 책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를 관찰하면서 특히 김정은이 젊음을 무기로 카메라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권력과 이미지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이런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의 정치 이미지로 확장됐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현대 각국에서 펼쳐지는 이미지 정치 역시 만만치 않게 고차원적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해 왔습니다.
‘백년사진’은 우리나라 신문 사진의 출발점인 백 년 전 기록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연재입니다.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사진이 증명하는 것과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는 취지로 3년 전 시작했습니다. 권력이 카메라를 통제할 수 있던 일제 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한국 대통령들을 거쳐 민주화된 현재까지 사진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가 관심 사항인 것 같습니다. 1920년대 신문에서 시작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 속 사진을 쭉 살펴보는 작업을 매주 토요일 한 칼럼을 목표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영상의 비중과 사용 빈도가 점점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사진과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점검할 필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통령 업무 보고 사진의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최근 대통령 영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재미’였는지 ‘이해’였는지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올 해 백년사진은 여기까지 정리하겠습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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