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12~2014년 덴마크와 손잡고 메르켈 등 도청” 파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31일 19시 20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2012~2014년 덴마크 국방정보국(FE)과 손잡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고위 정치인들을 도청했다고 덴마크 언론이 3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당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보도가 사실일 경우 2013년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이 미 정보당국의 민간인 사찰 프로젝트를 폭로한 이후에도 미국이 광범위한 도청을 지속한 셈이어서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

이날 덴마크 공영라디오 DR과 독일 언론들은 NSA와 FE가 ‘던해머(Dunhammer) 작전’으로 불리는 감시 프로젝트를 통해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덴마크와 인접한 유럽 국가의 정치인들을 감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NSA는 덴마크의 인터넷 케이블망과 ‘크라운 쥬얼(왕관의 보석)’로 불리는 덴마크 첩보 시스템을 이용했다. 도청 대상은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당시 독일 외무장관, 피어 슈타인브뤼크 당시 독일 야당 대표 등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NSA는 도청 대상들이 타인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전화 통화, 채팅 어플리케이션 메시지 등 ‘전화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집했다. NSA는 주로 테러, 러시아, 중국 등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도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대상국으로 보도된 국가들은 일제히 미국과 덴마크를 비난했다.

옌스 홀름 스웨덴 의회 하원의원은 “극도로 가증스럽고 황당한 사건이자 스웨덴 국민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오둔 리스바켄 노르웨이 사회당 대표는 “깊고 심각하며 불안한 배신행위”라고 말했다. 패트릭 센스버그 독일 연방의회 하원의원은 “덴마크가 고의적으로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 독일 DW 등 유럽 언론은 일제히 이번 사건을 전했다. 반면 미국 주요 언론은 이날까지 관련 보도를 다루지 않았다. DR은 “FE의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9명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 것”이라며 “덴마크 역사상 가장 큰 정보 스캔들”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도청 파문은 처음이 아니다. NSA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던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은 2013년 미 정보당국이 민간인의 휴대전화 통화 등을 도청하고 있다며 ‘프리즘 프로젝트’를 폭로했다. 미국 정부는 스노든에게 간첩죄 혐의를 적용했고, 스노든은 이를 피해 러시아로 망명했다. 스노든은 30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스캔들에 깊이 관여됐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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