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폐쇄’ 베르사유… 7개월 복원으로 되찾은 빛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9일 12시 58분



왕실예배당 복원 전(위)과 후(아래) 모습. 베르사유 궁전 제공
왕실예배당 복원 전(위)과 후(아래) 모습. 베르사유 궁전 제공
13일(현지 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

화려한 궁전 내부에는 고요한 적막 만이 흘렀다. 태양왕 루이14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프랑스 절대왕정과 문화유산의 상징인 이곳은 연간 1000만 명이 찾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파동으로 지난해 10월 30일 봉쇄조치가 내려져 7개월째 폐쇄된 상태였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문화시설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날 궁전 내부 곳곳에는 직원들만이 19일(현지 시간) 재개방을 앞두고 분주히 움직였다. 안내를 하던 궁전 관계자는 “너무 오래 쉬었다.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된 후 가장 오랫동안 문을 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베르사유 궁전 측에 따르면 코로나19 봉쇄기간은 문화재 복구와 복원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휴식기간’이었다. 루이14세, 15세 등 왕들이 애용한 개인공간과 집무실, 왕과 귀족들의 예배와 세례, 결혼장소로 유명한 바로크양식의 왕실예배당은 오랜 복원기간을 마치고 19일 봉쇄해제와 함께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루이 15세. 위키피디아
루이 15세. 위키피디아
베르사유 궁전 측이 이날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공개한 왕의 집무실은 베르사유 궁전 내 공간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복원된 장소다. 루이15세가 집무공간으로 애용하던 이 방은 벽면 곳곳이 백합, 사냥, 왕실의 영광 등을 상징하는 문양과 조각이 새겨져있었다. 그 위에는 금박 장식으로 치장됐다.

루이15세 집무실과 사무책상.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루이15세 집무실과 사무책상.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왕의 집무실이 세월이 지나면서 금빛을 잃고 조각품 등이 훼손되자 베르사유 측은 18개 전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방 가운데는 루이15세가 1760년 가구 장인들에게 의뢰해 무려 9년 만인 1769년 완성시킨 사무용 책상 등 역사적 가구 작품들이 놓여있었다.

2018년부터 복원이 시작된 ‘왕실 예배당’ 역시 코로나19 봉쇄기간을 끝으로 공사가 마무리돼 19일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베르사유 궁전 오른쪽에 위치한 이 예배당은 루이14세 때 프랑스 건축가 아흐두앵 망사르가 대리석과 금박장식을 총동원해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걸작이다.

루이 14세. 위키피디아
루이 14세. 위키피디아
1699년 공사를 시작해 1710년 완공된 이 예배당에서 루이14세는 매일 미사를 지냈다.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곳에서 결혼했다. 수많은 왕실 자손들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왕실예배당 역시 세월에 따라 지붕의 금박 장식이 빛을 잃고 건물 내외부에 설치된 조각상과 천장화 등 그림, 색유리창인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훼손됐다.

이에 2018년부터 150여 명의 복원 분야 전문가들, 1600만 유로(221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바로크 양식의 지붕과 천장 내외부, 내부 대리석 등을 청소하거나 교체했다. 지붕에 만 금박 30만 장이 사용됐다. 총 140개 이상의 조각품들도 손상된 부위가 복구됐다.

복원이 끝나 이날 현장에서 본 예배당 중앙 파이프 오르간은 강렬한 황금빛을 뽐냈다. 오르간 명인 호베흐 끌리꼬가 1711년 만든 작품으로 최고의 오르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베르사유 궁전 최고책임자인 까트힌 페가흐 회장은 “왕실 예배당이 이제는 100년 이상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간을 거슬러 다시 태어난 듯한 왕실예배당은 베르사유의 상징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징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르사유 궁전 뿐만이 아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등도 코로나19 봉쇄기간을 휴식 삼아 각종 정비와 복원을 마치고 19일부터 문을 연다. 프랑스 내 백신 1차 접종자가 전 국민의 30%인 2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봉쇄조치가 대폭 풀리는 상황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 유럽 내 주요 박물관, 미술관들이 속속 재개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오버투어리즘’으로 지친 유럽문화시설에 휴식시간을 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오버투어리즘’이란 ‘오버(over)’와 ‘투어리즘(tourism·관광)’이 결합된 말로, 과도하게 많은 방문자들이 특정 문화유산에 몰리면서 일대가 혼잡해지고 훼손된다는 의미다. 세계관광기구(UNWTO) 분석 결과 2000년 6억 명이던 국제 관광객 수는 2018년 14억 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절반(7억 명)이 유럽을 찾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전 세계 관광객은 74% 급감한 3억 명대에 그쳤다. 유럽 관광객은 70% 감소했다. 관광산업은 피해가 막심했지만 문화재 보전 및 관리 차원에서는 일정 정도 긍정적 부분도 있었다고 르몽드 등은 전했다.

주요 문화시설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관광 인파가 몰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재확산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주요 미술관 박물관마다 사전 온라인 예약, 시간대 별 출입 인원 제한, 관람 거리 유지, 한 쪽 방향 이동 등 코로나19 시대에 적합한 관람법을 속속 발표했다. 관람객이 뒤죽박죽 섞이며 바이러스가 확산될 위험성을 막으려는 조치다. 거리에서 만난 르보뉴 씨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문화시설들이 다시 열리니 너무 좋다”며 “다만 (코로나 사태 속)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올까 걱정된다”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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