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친 짓들 기억하나” “잊지 않았지” 프리드먼-바이든 아프간 일화

이은택 기자 입력 2021-04-20 10:38수정 2021-04-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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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그 미친 짓들(all the craziness)을 기억하나. 난 결코 잊지 않았는데.”(토마스 프리드먼 미 뉴욕타임스(NYT)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나도 잊지 않았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NYT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2002년 1월 당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화를 18일(현지 시간) 칼럼에서 소개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은 수세식 변기도 없는 곳에 머물러야 했으며,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바이든의 귀국 항공편 요청을 거절하자 바이든이 화를 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를 잊지 않았다고 전했다.

칼럼에 따르면 바이든은 9·11테러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나서 약 3달 뒤인 이듬해 1월 아프간을 방문했다. 그는 유명 국제관계 칼럼니스트였던 프리드먼에게 함께 가자고 했고 프리드먼은 흔쾌히 응했다. 이때는 탈레반 세력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미군에게 패배하고 물러난지 몇 주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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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은 당시 아프간 첫 방문을 앞두고 바이든의 감정이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날아간 다음, 다시 아프간 바그람 미 공군기지로 향하는 유엔(UN) 구호기에 탔다.

현지에 도착한 뒤 바이든은 새로 연지 얼마 안 된 미국 대사관에 머물렀다. 프리드먼은 그곳에 수세식 변기도 없었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간인인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가 소유한 현지 거처에 머물렀다. 프리드먼은 당시 카불에 대한 첫 인상을 ‘중동의 그라운드 제로(대폭발의 중심지)’라고 표현하며 “차라리 달에 국가를 건설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이든과 프리드먼은 함께 유누스 카누니 당시 아프간 임시정부 내무장관도 만났다. 두 사람이 장관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려 있는 것은 아프간 대통령의 사진이 아니라 숨진 민병대 지도자의 사진이었다. 그 지도자는 9·11테러 전에 암살됐다. 현직 장관이 집무실에 무장조직 지도자의 사진을 걸어뒀다는 것은 그만큼 아프간이 복잡한 나라고, 부족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프리드먼은 전했다.

바이든 일행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 아프간 거리의 모습을 마주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 자전거 페달을 힘겹게 밟는 모습, 변기 물로 세차를 하는 사람들, 흰 당나귀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이들은 봤다. 프리드먼은 “슬프고 기괴한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아프간 정부는 돈이 없어 공무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터졌다.

바이든과 프리드먼 일행이 귀국편에 오르기로 한 날 악천후가 심해 바그람 공군기지의 비행편이 취소됐다. 저녁 늦게서야 겨우 미군 수송기에 탑승하려 했지만 군인과 항공관제사가 이들을 가로막았다.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은 이들이 “민간인(프리드먼)은 군용기에 탈 수 없다”며 제지한 것이다. 바이든이 현직 상원 외교위원장인데도 불구하고 럼스펠드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고 프리드먼은 전했다. 바이든은 매우 냉정했고 짜증을 내진 않았지만 나지막하게 “화가 난다(pissed)”고 프리드먼에게 말했다.

럼스펠드는 미 국장방관을 두 번 지낸 인물이다. 43살 때 13대 장관을 지냈고, 69살 때 21대 장관을 지냈다. 미 역사상 최연소 국방장관, 최고령 국방장관 타이틀을 모두 가졌다. 그는 재임 중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아프간까지 전선(戰線)을 넓혀 일각에서는 “미국을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란 비판도 받았다.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백악관에 건의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바이든은 직접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콜린? 조 바이든입니다. 지금 아프간 바그람 공군지기 활주로에 서서 군 수송기를 타려고 하는데 국방부에서 민간인을 태우지 말라고 합니다. 폐를 끼쳐 죄송하지만 저희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파월은 “조!(바이든을 이렇게 불렀다) 내가 항공 관제사와 이야기 해볼게”라고 한 뒤 “관제사에게 전화를 좀 바꿔달라”고 했다. 예상치 못하게 전 합참의장이자 현직 국무장관과 통화하게 된 관제사는 ‘사색’이 됐다. 그는 통화가 끝난 뒤 “탑승하셔도 됩니다”고 했다.

바이든 일행은 이후 파키스탄을 거쳐 바레인으로 이동했다. 프리드먼은 “아프간에 들어가는 것보다 빠져나오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프리드먼은 지난해 미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12월 바이든을 인터뷰했다. 그는 공식 인터뷰를 마친 뒤 바이든에게 “우리의 아프간 방문과 막판의 그 미친 짓들(all the craziness)을 기억하나. 난 결코 잊지 않았는데”라고 물었다.

이에 바이든도 “나도 잊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프리드먼은 전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의 미군을 올 9월 11일까지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20년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까지 미국 대통령만 4명이 나왔다. 2400여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고, 미국이 쏟아 부은 돈은 약 2231조 원에 달한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철군을 결정했지만 워싱턴 일각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군이 빠져나오면 아프간의 상황이 불안정해지고 다시 테러 위협이 고개를 들 것이라는 우려다.

프리드먼은 “아프간을 변화시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가치가 있지만 큰 도움은 안 됐다”며 바이든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부족 문화가 뿌리 깊고 남성 중심,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한 곳에 서구 정치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어리석었다”고 했다. 이웃 나라인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서구화를 경계하며 미국이 실패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프리드먼은 “단기적으로는 미군 철수가 아프간에 재앙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처럼 스스로 균형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20년 전처럼 지금도 나는 아프간에 대해선 겸허하고 애증이 엇갈린다. 바이든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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