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인종혐오 범죄? 아시아계 미국인 불안감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7일 16시 04분


코멘트
미국 애틀랜타 지역에서 4명의 한국계 여성들이 총격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내 한인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만일 경찰 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이 한인 등 아시아계를 노린 인종 증오 범죄의 성격으로 밝혀질 경우 파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인종 간 평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각지에서 빈발하는 범죄에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며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칭하면서 비난했던 것도 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 이유 중 하나로 파악되고 있다.

‘AAPI(아시아·태평양계) 증오를 멈춰라’라는 이름의 단체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월 말까지 두 달 간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 신고는 모두 503건 접수됐다. 작년 3월 19일부터 계산하면 총 3795건에 이른다. 출신별로는 중국계 피해자가 42.2%로 가장 많았지만 한국계의 피해도 14.8%나 됐다. 사건유형 별로는 ‘욕설과 언어희롱’이 68.1%로 가장 많았고 아시아계를 피하거나 꺼리는 행동은 20.5%, 폭행이 11.0%였다.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너희 나라로 가라”고 욕을 하거나 택시(우버) 승차, 음식 서빙 등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 이 민간단체에 접수된 차별 사례들을 보면 ‘백인이 계속 길을 따라오더니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표현을 내뱉고 감’, ‘차량공유 서비스로 호출한 차에 탔더니 운전사가 “또 아시안이네. 당신은 바이러스에 안 걸렸길 바란다”면서 몸을 멀리함’ 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이들에게 갑자기 신체적 가해를 하는 심각한 사건들이 늘고 있다. 이달 초에도 뉴욕주의 한 쇼핑가에서 80대의 한국계 여성이 노숙인에게 주먹을 맞고 의식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에는 맨해튼에서 길을 가던 아시아계 남성이 복부에 흉기를 찔렸고, 또 다른 남성은 지하철에서 얼굴을 베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80대 태국계 남성이 산책을 하다가 젊은 남성의 공격을 받아 머리를 심하게 다친 뒤 결국 사망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은 이들의 인구 밀집도가 높은 로스앤젤레스(LA)나 뉴욕, 애틀랜타 등의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연방 정부와 의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이달 11일에도 “증오범죄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회에서는 아시아계가 모인 ‘아시아태평양 코커스’(CAPAC)의 연방 의원들이 나서서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 대도시에는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아시아계 노인들이 외출을 할 때 젊은 청년들이 옆에서 같이 걸어주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해 온 그의 조카 메리 트럼프는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벌어진 16일 저녁 트윗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범죄 유행은 당장 멈춰야 한다”면서 삼촌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주의 프레임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