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대사가 콜로라도에 둥지를 튼 이유는? [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기자 입력 2021-01-22 12:00수정 2021-01-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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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오전 7시30분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주최한 한미동맹포럼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연사로 나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개 세미나를 열기 어려워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하는 웨비나에 초청됐다. 해리스 대사는 서울 중구 정동의 미국대사 관저에서 한국 병풍과 성조기를 배경으로 검은 색 마스크를 낀 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8년 7월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그는 2년 반의 서울 생활을 마치고 21일 미국 귀국길에 올랐다. 민주당 출신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관례에 따라 대사직에서 물러나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해리스 대사는 2015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3년 동안 하와이에서 미국 태평양군사령부 사령관(대장)을 지낸 미 해군 조종사 출신이다. 미 해군 역사상 최초로 제독으로 진급한 아시아계(일본) 미국인이다. 해리스 대사는 발언 모두에서 “2년 반 전 미 국방부에서 국무부로 소속이 바뀌면서 비행복을 양복으로 바꿔 입고 한국에 왔다”고 운을 뗐다.

해리스 대사가 한미동맹재단 주관 웨비나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2년 반의 대사 생활을 마감하고 21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중 사이 선택 강요는 잘못된 내러티브
그의 고별 강연 요지는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중국의 악의적인 도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늘 강조했듯이 이날도 한미동맹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한국과 미국의 ‘린치 핀(핵심 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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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대사는 “한국 정부가 안보동맹과 무역파트너 속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런 말은 한미동맹의 역사와 힘에 의심을 심기 위해 잘못 만들어진 내러티브(narrative)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조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는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1950년에 선택했고, 중국도 그랬다. 신생국인 한국은 1953년에 선택했으며 북한은 1961년에 선택했다”며 한미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1953년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1961년엔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이 맺어진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한미동맹 역사를 구체적인 연도와 함께 제시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 한국에 이양 △2007년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2015년 한미안보협의회 △2018년 한미FTA 재협상 개정안 타결 △2020년 코로나19에 한국 총선 미국 대선 실시 등을 꼽았다. 한미동맹의 발전 과정을 조목조목 적시한 것이다.

2019년 10월 주한미군전우회가 주최한 한미동맹의 밤에서 해리스 대사가 연설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에서 만난 해리스
기자가 해리스 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봄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에서였다. 해리스는 2015년 5월부터 3년 동안 미국 태평양군사령부 사령관(대장)을 지냈다. 워싱턴특파원 출신들로 구성된 한미클럽 임원들과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조건)로 만난 그는 태평양군사령부 회의실에서 세계 지도를 대형 슬라이드에 띄워놓고 미국에 가장 위협되는 곳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작은 체구에 군복을 입은 그가 지휘봉을 잡고 북한을 거론할 때 미국의 핵심 동맹은 한국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마지막해인 2016년엔 미국의 대북 전략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요약됐다.

하지만 하와이 태평양군사령부에선 북한이 언제 도발할지 몰라 밤낮없이 경계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1시간 가까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을 얘기하는 내내 그의 관심은 북한에 집중돼 있었다. 일본계 미국인(Japanese American)인 해리스는 주일미군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일본에서 건너가 미국 테네시 주에서 자란 해리스는 당시 고조된 미국 내에서의 반일 감정을 의식해 어머니가 집 밖에선 일본말을 일절 입 밖에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일본 사람으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린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 포고 없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일본의 기습 도발로 긴장의 역사를 품에 안고 있는 하와이를 일본계 미국인이 태평양총사령관으로 지키고 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2018년 1월 말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한식당에서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이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에게 그의 이름이 새겨진 이순신 장군 동상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홈페이지


#지난해 사표 소동 논란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4월 사표 논란을 빚었다. 로이터통신에서 해리스 대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11월 미국 대선 이후 사임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것이 계기였다. 로이터 보도가 나오자 당시 주한 미 대사관 대변인은 “해리스 대사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을 위해 지속적으로 적극 봉사하고자 한다”며 “대사께서 평소 즐겨 말하는 것처럼 ‘한국은 미국 대사로서 최고의 근무지이자 미국에게는 최고의 동반자이자 동맹’이다”는 자료를 냈다.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진화하려 했지만 11월 사임설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도 아니어서 여운을 남겼다.

해리스 대사는 2019년 하반기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다룰 때 한국 국회와 언론을 상대로 미국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해야 했다. 군인 출신 외교관으로 직접적인 화법을 즐겨 써 전통적인 외교관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자주 구설에 올라 한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의 부정적 이미지에 일각에선 일본계 혈통을 문제 삼으며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을 ‘일제 총독’에 비유하며 조롱하는 일도 빚어졌다.

해리스 대사가 2019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 좌파 운동권에 둘려 싸여 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동아일보 DB


#보수 성향의 해리스
그의 사임설 보도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2월 워싱턴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무부 지휘부에 트럼프 정부 임기가 끝나면 자신도 주한 미국대사직을 그만 두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을 5배 올려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을 주재국 대사로서 그대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도 해리스 대사의 입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의 생각과 거리 있는 무리한 요구를 주재국 대사로서 관철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국무부 본부의 강경한 입장을 그대로 한국에 전달해야 하는 상황을 해리스 대사가 상당히 힘들어 했던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군인 출신으로 곧이곧대로 일 하는 스타일로 미국과 한국의 협상 틈바구니에서 악역을 맡아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으리라 짐작된다.

특히 보수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군 출신의 해리스 대사가 학생운동권이 주류인 문재인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미동맹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해리스 대사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하는 문재인 정부 인사와 케미를 맞추기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정황을 보면 그의 사표 소동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2015년 6월 10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를 방문할 때의 모습. 이 곳에 전시된 천안함을 둘러본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평택=사진공동취재단


#공사 구분이 뚜렷한 따뜻한 사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콧수염과 ‘일제 총독’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부각하려 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대사관 내에서 직원들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의 재임 시절 대사관 직원들의 급여가 과거 역대 대사 중 어느 때 보다 인상 폭이 컸다고 한다. 대사관 직원들과 수시로 단합 대회를 가지면서 직원들을 격려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공사(公私) 구분이 엄격했다고 한다. 해리스 대사 부인인 브루니 브래들리 여사는 해군 장교 출신이다. 최근 브루니 여사가 미국에 다녀온 길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해리스 대사는 업무 시간이라는 이유로 공항에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평일 근무 시간에 사적인 일로 인력이나 장비가 동원되는 것에 대해 철저히 선을 긋는 스타일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과거 대사들이 의전을 중시하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높이려고 한 것과는 대조된 행보였다고 대사관 직원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이지만 일본인으로 취급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자동차를 타는 것을 거부하고, 미국인임을 강조한다. 한 행사에서 일본인이 개인적인 친근감을 표시하자 “난 미국인”이라며 거리를 두었다는 얘기도 회자(膾炙)되곤 한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참관 등을 위해 2017년 8월 방한한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이 22일 오후 오산 공군기지안에 있는 35방공포여단 패트리어트3 미사일 포대 앞에서 내외신 합동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년 임기 채울 수 없었을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7월 부임 후 2년 반을 한국에서 보냈다. 통상 대사의 임기는 3년이지만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관례에 따라 대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4월 해리스 대사는 11월 미 대선 직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 이후 대사직을 계속 수행할 뜻도 있음을 내비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차기 대사가 임명될 때까지 대사직을 맡아달라고 하면 계속 대사직을 수행할 의향이 있음을 넌지시 타진했을 것으로 외교가에선 관측했다. 그러나 바이든 인수위에선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미국 행정부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관행상 주요국 대사들은 교체가 원칙일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에서 대사 자리를 상당기간 비워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바이든 정부에서 해리스 대사에게 후임자가 갈 때까지 더 있어 달라고 요청했다면 그 자신도 거절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이 주호주 미국대사에 지명되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를 해칠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대중 강경파로 중국의 악의적 행동을 비난하는데 앞장 섰다. 미 해군 홈페이지
#콜로라도에 새 둥지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 대사 후임을 결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인 중국과 러시아 일본 주재 대사를 먼저 임명한 뒤 시기적으로 한국은 그 이후에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해리스 후임에 누가 올지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어쩌면 상당 기간 로버트 랩슨 부대사가 대사대리직을 수행해야 할 수도 있다.

해리스 대사 부부는 퇴임 후를 대비해 콜로라도 주 스프링필드에 자택을 마련해놓았다. 기존 주택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새로 지었다. 브루니 여사가 지난해 9월 이 곳을 방문해 두어 달 체류하며 새 보금자리를 정리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해리스 대사는 미국 테네시 주와 플로리다 주에서 주로 자랐다. 그런 그가 콜로라도에 둥지를 마련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해리스 대사는 주변에 “경치 좋은 콜로라도에서 낚시를 즐길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랜 공직을 거치면서 지친 심신을 당분간 추슬러야 할 것 같다. 일각에선 특별한 연고가 없는 콜로라도 주 스프링필드에 안식처를 1년 전부터 마련한 것이 은퇴 후 계획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해군 조종사 출신인 만큼 보잉사 등 항공업체나 미래의 파일럿을 육성하는 후진 교육에 관심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관련 산업의 클러스터가 스프링필드 인근에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해리스 대사와 두어 달에 한번 씩 만난 것으로 알려진 안호영 전 주미 한국대사는 고별인사에서 “1956년생으로 조지타운대를 똑 같이 졸업한 우리는 외교관과 군인으로서 정부를 위해, 그리고 한미동맹을 위해 헌신했다”며 “자신보다 더 훌륭한 부인과 결혼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해 해리스 대사는 미국 해군장관 후보에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계인 해리스 대사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그가 콜로라도에서 펼칠 인생 2막이 어떨지 궁금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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