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풍자 만화’ 보여준 교사, 참수 당해…佛 문화전쟁 번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8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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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다(Je suis un enseignant).”

17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콩플랑생토노린의 부아돌르 중학교 앞. 건물 정문에는 수백 개 꽃다발이 놓였고 200여 명의 주민이 눈물을 흘리며 전날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에 희생된 교사 사뮈엘 파티 씨(47)를 추모하고 있었다.

국기를 들고 나타난 주민 뒤헝 씨는 “지난주에도 학교에서 2㎞ 떨어진 곳에서 경찰이 공격당했다. 프랑스 전통 가톨릭과 이슬람 간 ‘문화전쟁’이 일상화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동료 교사 피조 씨는 기자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수업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손에 ‘나는 교사’란 팻말이 들고 있었다.

파티 씨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수업에서 활용했다는 이유로 체첸계 무슬림 난민 청년 압둘라 안조로프(18)에게 목이 잘려 숨졌다. 2015년 같은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을 습격해 12명이 숨진 사건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종교적 문제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해 전 유럽이 공포와 충격에 빠졌다.

르몽드 등에 따르면 안조로프는 16일 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누가 파티 씨인지를 물어 신원을 확인한 후 그를 따라가 살해했다. 범행 직후 트위터에 파티 씨의 머리 사진과 함께 “알라를 받들어 무함마드를 조롱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강아지를 처단했다”는 글을 올렸다.

안조로프는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저항 과정에서 ‘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인 그는 유년 시절 난민인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체첸에서는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다.

파티 씨는 이달 5일 언론 자유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무함마드 만평을 보여주기 전 무슬림 학생들에게 “불쾌하면 교실을 나가도 된다”고 밝혔다. 무슬림이 무함마드에 관한 어떤 묘사도 불경 및 모욕으로 여긴다는 점을 감안한 배려였다. 그런데도 한 무슬림 여학생이 남아서 수업 모습을 촬영했고 부모에게 알렸다.

이 여학생의 부친은 거세게 항의하며 파티 씨의 해임을 요구했다. 그는 이틀 후 소셜미디어에 파티 씨를 ‘폭력배’라고 지칭하며 신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무함마드가 모욕을 당했으니 이슬람 신자라면 학교에 가서 항의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이후 파티 씨를 향한 협박 전화가 빗발쳤다. 안조로프 역시 이를 보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정교분리(라이시테) 정책을 시행하는데도 무슬림 인구는 가장 많아 양측의 격렬한 충돌이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한다. 미 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프랑스 무슬림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8.8%인 570만 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다. 과거에는 옛 식민지였던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이 대부분이었지만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의 유럽 유입이 본격화한 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난민과 프랑스인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2017년 집권한 마크롱 대통령은 학교 내 히잡 착용 금지 등 정교분리 정책을 추진하며 이슬람계 국민과 갈등을 빚어 왔다. 이달 2일 “더 강력한 정교분리 정책을 12월 중 내놓겠다”고 선언했고 사건 당일 밤 현장을 찾아 “극단주의에 굴하지 않겠다”며 정교분리 정책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JeSuisSamuel’(내가 사뮈엘이다)‘는 해시태그와 추모글이 넘쳐난다. 프랑스 중등교사노조는 17일 “테러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계속 가르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는 21일 파티 씨의 장례를 국장(國葬)으로 치른다.

콩플랑생토노린=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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