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학생 통합 꿈꾸는 프랑스 ‘포용교육’ 현장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9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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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프랑스 파리 접경지역인 슈렌느는 가을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조용한 주택가들이 그림처럼 모여 있었다. 언덕길 끝자락에 유리창들로 벽면을 장식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장애와 비장애인의 통합을 꿈꾸는 포용교육을 추구하는 중앙특수교육연구원(INSHEA) 건물이었다. 이곳에는 매년 2000명이 넘는 일반·특수교사, 교육 관계자 등을 교육하고 특수교육의 미래를 연구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장애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프랑스 포용교육의 오늘과 내일을 들어봤다.


●일반교사까지 특수교육에 동참하는 포용교육

자크 마퀼로비크 중앙특수교육연구원 원장(51·교수·사진)은 “포용교육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특수교육을 이해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포용교육이란 장애의 정도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장애 아동과 함께 일반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일반 교사도 장애 특수교육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의 목표는 프랑스 지역별로 특수교육자 양성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각 자치구의 특수교육 교습법을 통합하고 그동안 연구해온 특수교육학을 교제로 만들어 포용교육에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자크 원장은 프랑스가 특수교육 선진국이지만 포용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장애인을 가르치는 건 특수교사의 몫이다. 일반학교 교사가 장애인을 교육하는 경우는 일부만 시행하고 있다. 장애인 교육 방식이 비장애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포용교육을 정례화 하는 관련 법안이 개정돼야 일반 교사의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수교육 과정을 이수한 일반 교사가 같은 학교의 다른 교사와 정보를 공유하면 포용교육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는 포용교육을 지향하지만 아직 장애인 교육 시스템이 완벽하게 통합되진 않았다. 연구원의 경우 교육부와 고등교육부 산하 기관으로 감독을 받고 있다. 교육부는 전통적으로 장애인 교육에 관심이 높지 않았다. 사실상 복지부가 포용 정책의 중심이 돼 왔다. 장애인 통합교육과 관련해 교육은 교육부, 복지는 복지부로 나뉘어있는 한국 상황과 비슷했다.

자크 원장은 “프랑스에서 일반학교에 등록된 장애학생은 4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비장애인 학급에 정상적으로 참여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장애가 심하지 않은 학생 일부가 참여할 뿐 대부분은 같은 학교에 있는 별도의 특수반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최근 완전통합교육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장애인의 장애 정도차가 너무 커 비장애 반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크 원장은 “포용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선 장애아동을 둘러싼 3자, 즉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을 받은 일반 교사, 장애아동이 체류하는 장애시설 생활교사가 정보를 교류하는 등 연계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수교육 양성 활성화 시급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은 2018년 현재 특수교육대상자가 전체 학생의 약 1.4%인 9만 명으로 이 중 약 71%(6만4443명)가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반면 전체학급 교원 5만4253명 가운데 특수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경우는 0.1%(580명)에 불과하다. 일반 교사를 위한 통합교육 및 장애 이해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 지원이 체계적이지 않아 특수교육대상자를 가르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일반학교 당 1,2개 특수학급을 운영하고 있지만 특수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담당하면서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장애인의 평생을 보장해주자는 기본 취지는 유지하면서도 앞으로는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 회사 고용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가 자선의 의미를 넘어 사회연대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프랑스에선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장애아동 부모들의 요구가 늘고 있다. 비교적 경미한 언어·계산 장애를 갖고 있는 자녀들에게 장애 수당을 달라는 사례도 있다. 반면 정부의 정책을 모르는 저소득층은 자녀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 조차 지나치는 경우가 있어 혜택에서 소외되기도 했다.

자크 원장에게 통합교육 초기인 한국에 조언을 부탁하자 “나라마다 장애인 대책은 다를 수 밖에 없다”면서도 “작은 규모부터 포용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일반학교로 적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장애·비장애 학생이 함께 뛰노는 일반학교

파리 인근 퓨토 시 장조레스 초등학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이 함께 하는 포용 학교다. 특수반 1곳에서 정신장애 아동 12명이 교육을 받는다. 특수 교사와 도우미 교사가 6~11세 학생을 관리한다. 이들 중 일부는 오전 교육을 마친 뒤 비슷한 또래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받는다.

이날 3학년 체육시간.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발레 동작과 토끼뜀을 하며 몸을 푼 뒤 2인 1조가 돼 스트레칭을 배웠다. 스포츠 강사가 학생들과 눈을 맞추며 직접 학생의 팔 다리를 잡고 균형을 잡는 법을 가르쳤다. 20여명의 학생들 중 특수반에서 온 장애 아동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일반 학급 담임교사 쥘리에트 안 씨(가명)는 “특수반 학생을 구분하는 자체가 차별”이라며 “정신 장애 아동들은 적응기를 거치면 어려운 불어 과목 등을 제외한 체육, 미술 수업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중증 자폐증 학생은 통합교육을 받으며 상태가 나아지기도 했다. 쥘리에트 씨는 “통합수업을 받는 비장애 학생들은 장애 학생을 스스럼없이 대하며 함께 사는 세상을 배운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수 학급 담당 교사 부르니에 데보라 씨도 “일반 학급 수업에 참가하는 장애학생들은 활력을 찾는 사례가 많다”며 장애·비장애 학생 간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장애 정도가 천차만별인 게 그에겐 걱정거리였다. 최근 전학을 온 학생이 장애 정도가 심각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증 학생은 개별적인 도우미를 두거나 시설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

부르니에 선생은 일반 학교에 취업해 5년 간 일하다 2년 전 특수교사를 지원했다. 차별 없는 교육에 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한계도 느끼고 있다. 그는 “일부 일반 학급에선 장애 학생이 배치되면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학급 선생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악사에게서 아이디어를…점자책의 역사▼

아버지는 딸을 볼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실명한 시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언젠가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은행에서 40여 년 간 일하다 퇴직한 뒤 시각장애인 박물관 자원봉사를 지원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박물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점자의 역사를 소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파리 7구 발렁탕아우이(valentin hauy) 시각장애인협회 내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미레유 뒤엔(mireille duhen) 씨(70)가 그 주인공이다.

1886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시각 장애 관련 희귀 사료 및 기구를 약 5000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30평 남짓한 박물관 내부에는 시각 장애인 용 점자(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도록 만든 시각 장애인용 문자) 관련 자료로 가득했다. 프랑스는 물론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점자 소개 책자들이 전시돼 있었다. 1954년 유네스코가 발간해 전 세계에 보급한 점자 책자에는 한국의 점자도 소개됐다.

점자의 역사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발렁탕 아우이가 거리에서 한 어린 시각 장애 악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발렁탕은 음악을 듣고 동전을 건넸는데 악사는 “너무 큰 금액”이라며 거절했다. 동전을 손으로 만져보고 얼마짜리인지 확인한 거였다. 발렁탕은 이에 착안해 시각장애인 책을 만들었다. 알파벳을 입체로 만들어 시각 장애인이 만져서 읽을 수 있도록 한 것. 이 책은 한 권이 5kg나 됐다. 알파벳을 음각 한 종이는 앞면 만 사용할 수 있어 부피가 커진 것이다. 발렁탕은 1786년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을 세운 교육가였다.

그 후 3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루이 브라이(Louis Braille)가 알파벳을 점자로 바꾼 점자 가이드 책을 내면서 시각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동등하게 교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점자는 발전을 거듭해 시각 장애인이 점자를 송곳으로 찍어 직접 편지를 쓸 수 있는 기구를 비롯해 점자 타자기, 점자 컴퓨터가 개발됐다. 점자를 양면으로 인쇄하는 기술도 개발돼 책 부피도 줄었다.

발렁탕아우이 박물관은 2017년 6월 말 이후 문을 닫은 상태다. 전임 박물관장이 퇴직한 뒤 후임자를 찾지 못한 데다 재정이 부족해진 탓이다. 하지만 뒤엔 씨는 지금도 박물관에 출근해 사료를 정리하고 있다. 협회에 견학 요청이 들어오면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뒤엔 씨는 “올해에만 480명이 우리 박물관을 견학했다. 한국인 단체 방문도 올해 세 번이나 했다”며 “박물관이 재개관할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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