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아버지가 독립선언한 곳에서 아들이 시집을 바치다

  • 뉴시스
  • 입력 2019년 2월 9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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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청년이었던 아버지가 100년 전에 이곳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곳에 서 있으니 마음이 뭉클하네요.”

‘2.8 독립선언’을 이끈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 중 한 명이었던 백관수의 차남인 백순 박사는 9일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재일본 한국YMCA회관 2층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걸린 백관수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백 박사는 이날 YMCA에서 열린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아버지가 2.8 독립선언 후 감옥에 갇혀 1년 동안 쓴 한시를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해 ‘동유록(東幽錄)’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묶어 발표했다. ‘동유록’은 도쿄 감옥에서 지은 시라는 의미다.

백 박사는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앞두고 선친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유품으로 갖고 있던 아버지의 한시를 번역하는 일이었다”면서 “꼬박 2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유록은 ‘봄’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백 박사는 “2월은 한겨울에서 봄에 조금 가까운, 봄을 기다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아버지는 2.8 독립선언으로 감옥에 갇히면서 봄, 곧 조선의 독립을 꿈꾸셨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정녕 때는 2월이건만 봄 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백 박사는 “선친이 살아계셨으면 지금 130살”이라면서 “통일이 되지 않은 한국을 보면서 아직 봄은 안 왔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메이지(明治)대학교 법학부를 다녔던 백관수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박사는 “내가 국민(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납북돼 2.8 독립선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두 가지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919년 2월 7일 밤 독립선언의 대표자들이 아버지 하숙집 방에 모여 논의하는데 똑똑 하는 문소리가 나서 모두 들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 하숙집 아주머니가 ‘청년들이 뭐하는지 모르겠지만 먹으라’면서 떡을 가져왔다고 한다.”

”또 하나는 독립선언을 한 뒤 감옥에 갖히자 일본인 여자 대학생들이 감옥 앞에서 데모를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했다는 것이다.”

백 박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대와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연방 노동부 소속 선임학자로 28년간 근무했다.

이번에 일본을 처음 방문했다는 백 박사는 이후 한국에 가 아버지 묘소에 시집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백 박사는 “선친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6.25 전쟁 이틀만인 1950년 6월 27일 납북됐는데 어머니가 통일되면 모셔오자면서 고창에 빈묘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상무와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하고 광복후 한민당 소속으로 제헌국회 의원이던 백관수는 6월 25일 전쟁이 나자 26일 장남과 차남인 백 박사를 시흥으로 피난시키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가 27일 납북됐다는 것이다.

【도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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