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언론자유-교육개혁 적극적… 사우디 등 주변국들 따가운 시선
카타르, 관계복원 위해 속도 늦출듯… 알자지라 방송 등 위축 가능성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권 국가들의 ‘왕따 시키기’ 움직임이 카타르가 추진해 온 다양한 개혁·개방 조치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가 외교안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국가 운영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중동 전체의 개혁·개방 움직임 둔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동 국가 중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더불어 가장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해 온 카타르는 언론 자유와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카타르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개혁·개방에 나서는 중동 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금융, 물류, 부동산개발 등에 초점을 맞춘 개혁·개방을 추진해 온 두바이보다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카타르의 개혁·개방은 사우디 등 주변국의 불만을 더욱 키웠다. 카타르의 변화로 자국 사회의 문제점이 더욱 부각되고, 국민의 불만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이번 단교 사태로 주목 받는 곳 중 하나는 카타르가 설립해 운영하는 알자지라 방송이다. 알자지라는 ‘중동의 CNN’이란 평가를 들을 만큼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사우디 왕실을 포함한 중동 국가 리더들의 문제점을 비판해 왔고 △일부다처제 △여성의 참정권과 사회 참여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민감한 이슈도 적극 다뤘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사우디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알자지라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카타르는 이번에 단교를 선언한 국가들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긴밀한 관계여서 갈라설 수 없다”며 “결국 카타르는 사우디 등 주변국이 그동안 불편하게 생각했던 개혁·개방 조치들을 수정하거나 추진 속도를 늦추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관계 복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자지라 운영과 관련해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왕실과 정부가 알자지라 경영에서 영향력을 크게 줄이는 식의 구조 개편을 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유수의 대학 분교를 유치해 설립한 교육특구 ‘에듀케이션시티’ 같은 교육·문화 육성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서구의 대학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수입한 에듀케이션시티는 중동에서 보기 드물게 자유로운 비판, 토론, 연구가 가능한 지역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카타르의 개혁·개방 움직임이 위축될 경우 에듀케이션시티 같은 비(非)정치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구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 역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카타르가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지원했다”고 강조하는 사우디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의 본산이며 2001년 9·11테러 가담자의 다수가 이 나라 국적자인데, 사우디가 카타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국제 문제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가드너는 “이슬람권에서 그동안 사우디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극단주의에 불을 붙여 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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