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핵능력 대폭 강화하겠다”…국제사회 발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3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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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당선인이 미국의 핵무기 능력을 대폭 강화 및 확대하겠다고 밝혀 국제 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내내 견지했던 '핵없는 세상'이라는 어젠다를 무시하고 새로운 핵 군비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특히 핵 비확산을 명분으로 추진해 온 북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도 균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대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는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strengthen)하고 확장(expand)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핵 전투력 강화 방침을 밝히자 맞대응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가진 국방 관련 연설에서 "전략 핵무기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하며 특히 현존하거나 앞으로 개발될 미사일 방어체계를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미사일 성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핵능력 강화 및 확대를 분명히 언급하면서 다음달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러가 과거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 체제로 재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WP는 "트럼프의 핵능력 강화 선언으로 미러 양국이 핵무기 수와 크기를 줄기 위해 수십 년 간 해온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군비 경쟁의 망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비전을 통해 세계를 핵전쟁의 위협에서 해방하겠다고 선언했고 미러 간 핵군축 협상을 추진해왔다. 2011년 미러는 1991년 체결돼 만료된 전략무기감축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2018년 5월까지 미러의 대륙간핵탄도미사일(ICBM) 등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수를 각각 2200개에서 1550개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이 협정은 2021년까지 유효하며, 미러 간 합의에 따라 5년 씩 연장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부터 핵탄두를 추가 개발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돌연 핵능력 강화 및 확장을 선언한 것은 대선 기간 내내 '미국 우선주의'에 기초해 "미군을 다시 강력하고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트럼프는 10월 TV 토론에서 "미군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뒤쳐져 있고 낙후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수는 러시아보다 적다. 미 국무부가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총 710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어 러시아의 7300여개보다 200여개 적다. 특히 핵전력의 3대 축인 ICBM, 전략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는 1367개로, 러시아의 1796개보다 역시 적다. 때문에 워싱턴 일각에선 '핵없는 세상'이라는 어젠다가 비현실적인 만큼 기업가 출신의 트럼프가 '현실적인' 선언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미카엘라 닷지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WP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핵무기 체계를 강화하고 첨단화하고 있는데 미국만 홀로 그동안 군비경쟁에서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핵 군비 경쟁의 전 단계로 낙후된 핵 시설을 현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평가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ICBM 핵탄두 교체 등 핵시설 현대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차기 행정부에서 시행 여부를 판단하도록 관련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전미군축협회 대릴 킴벌 소장은 CNN 인터뷰에서 "핵무기 현대화를 위해서는 2021년부터 15년 간 매년 180억 달러(21조 6000억 원)가 들어가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를 실행하는 것 자체가 핵 능력 강화 및 확장의 일환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발언이 미러 간 핵 군비 경쟁에 대한 우려로 번지자 정권인수위는 일단 진화에 나섰다. 새 행정부의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지명된 제이슨 밀러 인수위 대변인은 성명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은 핵 확산이 갖는 위협을 언급한 것으로 특히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과 불안정한 불량 정권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라며 "결국 이를 막기 위해선 미군의 억제력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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