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 혼자 해결못해”… 패권의 한계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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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엔연설서 ‘국제 공조’ 강조

“인류 역사상 일국 패권 체제 기간은 짧았다. 많은 사람들이 냉전 종식으로 잊고 지냈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일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서 “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과 워싱턴 정가마저도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만들었고, 또 풀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미국이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국제적 환경에 처해 있음을 간접적으로 하소연한 셈이다. A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강국이 세계의 가장 심오한 문제를 푸는 데 제한적인 힘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분석했다.

오바마는 재임 기간 내내 국제적인 안보 위기에 대해 ‘솜방망이 대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미 워싱턴의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윌리엄 갤스턴 선임연구원은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오바마에 대해 “8년간 회초리는 거의 없고 당근도 별로 없는 외교정책을 실험해 왔다”며 미국 외교를 “이빨 빠진 상태”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갤스턴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미온적 대처는 국제적 난민 사태로 이어졌고,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막지 못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 나치 정권에 대한 유화정책을 떠올리게 한다고 오바마를 맹공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덴마크 총리도 20일 WSJ에 “오바마가 세계정세 주도를 주저하는 동안 푸틴은 유럽서 세력권을 갖췄다”며 “미국이 후퇴하면 독재자들이 채울 공백이 생긴다”고 비판을 더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 ‘고별 무대’에서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 빈곤, 지카와 에볼라 같은 전염병 퇴치, 북한의 핵 위협 등을 거론하며 “(미국 혼자)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중동 문제에 대해서도 “그 어떤 외부 세력도 종교와 민족이 다른 이웃을 오랜 시간 동안 공존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장기적으론 (미국이) 자유로운 행동을 지양하고 국제규범을 지키면서 안보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재임 기간 중 다자외교의 가장 대표적 무대인 유엔 총회를 타국과의 협력은 물론이고 미국의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는 기회로 활용해 왔다. 2013년엔 이라크전쟁 등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를 거론하며 “미국의 일방적 행동으론 (중동의 평화와 번영을) 얻기 힘들다”고 인정하고 “미국은 어렵게 겸손함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미 제국(American Empire)’이라는 이미지는 유용한 선전 도구지만 현재 정책엔 반영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지난해엔 시리아 내전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이란을 포함한 모든 나라와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고 이란 핵 협상의 성과를 소개하며 “러시아와 중국과 함께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이날 글로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겨냥하는 발언도 했다. 그는 “종교 근본주의와 과격한 애국주의 및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은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벽으로 둘러싸인 나라는 스스로를 가둘 뿐”이라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대형 장벽을 세우겠다는 트럼프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오바마는 “단순히 벽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외부의 영향을 막기에 세상은 너무 좁다”고 트럼프를 겨냥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오바마#유엔연설#국제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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