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난 뒤 27일 원폭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하기로 하자 중국에서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국 일본이 침략 행위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지 않은 채 피해국으로 부각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에 의해 대학살이 벌어진 난징(南京)을 찾아와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12일 ‘오바마가 히로시마에 간다고 하니 일본인들이 딴 생각을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 사회는 이를 계기로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것을 부각시켜려 하고 있다”며 “이는 2차 대전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세계의 인식 및 감정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사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음에도 일본 우익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흉악 난폭한 침략자의 이미지를 세탁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인류가 왜 두 차례나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려 들지 않고 원자탄 실험장이 된 것만 부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중국 등 아시아 피해국들에게 성의 없는 사과로 일관하면서 미국으로부터는 원폭 투하에 따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묵묵히 한발씩 나아가는 희한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도 12일 ‘히로시마에 드리운 난징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일본 측이 ‘사죄’의 의미로 덧칠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조기 종전을 위한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미국인과 일본인 수백만 명의 희생을 줄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제기했다.
신문은 특히 2차 대전은 1939년 9월 독일 나치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1937년 7월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1937년 7월 7일 일어난 노구교(蘆溝橋) 사건을 빌미로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시작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 측 주장에 따르면 난징 대학살로 희생된 중국인은 30만 명에 이른다. 신문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는 히로시마는 난징대학살 당시 양쯔강 유역 공략전과 난징대학살에 참여했던 일본군 제 5사단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라고 전했다.
앞서 구이융타오(歸泳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교수는 11일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수 있다면 아베 총리도 난징을 찾아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이 교수는 “중국은 원폭 투하가 초래한 비극을 동정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이상에 찬성하지만 히로시마를 얘기할 때는 단지 이념적 주장만 해서는 안 되고 역사적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먼저 일본 군국주의가 초래한 중국 침략전쟁이 가져온 손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참고해 일본 총리도 당연히 (일본군이) 대학살을 저지른 난징 방문을 추진해야 한다”며 “난징 방문이 현실화되면 중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서 큰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수파가 득세하는 일본 정치권에서 일본 총리의 난징 방문은 실현되기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구이 교수는 내다봤다.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의 원폭 피해 고통은 동정할 만하다”면서도 “2차 대전의 교훈은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과 전후 국제질서를 결연히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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