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오른 사우디, 오바마 손 잡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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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회 ‘9·11 연계 조사’ 추진에… 사우디 “美자산 처분” 강력 경고
오바마 3일간 방문… 살만국왕 만나… 양국 관계개선 회의적 전망 많아

지난해 미국과 중국에 이은 군사비 지출 3위 국가는 어딜까. 러시아를 떠올리겠지만 사우디아라비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이달 초 발표한 ‘2015년 세계 군사비 지출 경향’에 따르면 사우디의 군비 지출은 지난해보다 97%나 급증한 872억 달러(약 99조1500억 원)로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 중인 러시아를 제쳤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최근 3년간 국제유가 하락으로 유례없는 경제난을 겪고 있다.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공급하던 기름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국영 아람코의 기업공개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경제난 속에서도 엄청난 군비를 지출한 것은 그만큼 안보 불안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에 기초한 중동지역 맹주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양국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사우디의 의구심은 2011년 ‘아랍의 봄’ 때 오바마 행정부가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를 수수방관하는 것을 보고 시작됐다. 이집트는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 국가이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다. 지난해 이란과의 핵합의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오바마는 사우디의 오랜 앙숙이자 미국의 숙적인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게다가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의 원유생산량이 급증하면서 고삐 풀린 국제유가를 붙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사우디의 이런 좌절감은 최근 미 의회가 9·11 테러범과 사우디 왕가 및 정부, 기업의 연계 의혹을 법정에서 다룰 수 있게 이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해제하는 법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폭발했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아델 알 주바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은 문제의 법안이 통과되면 사우디가 보유한 7500억 달러(약 852조 원) 규모의 미국 채권을 한꺼번에 처분하겠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이렇게 잔뜩 독이 올라 있는 사우디를 방문한다. 오바마는 사흘간 사우디에 머물며 지난해 워싱턴을 찾았던 살만 국왕을 만나고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등 사우디가 주도하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정상들과도 회담한다.

이번 방문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개선될지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이 많다. 둘의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바마도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4월호 인터뷰에서 사우디를 겨냥해 “미국의 국익과 무관한 분파적 분쟁에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무임 승차자들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혹독한 사막에서 절대왕권을 구축한 사우드 왕가의 노회한 생존 능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사우디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사우드 왕가 또한 국내외 위협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선 미국이라는 우산이 필요하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8개월도 채 안 남았고, 후임자는 누가 되든 사우디와 관계를 달리 설정하리라는 것을 사우드 왕가 역시 잘 알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 전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오바마#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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