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세계 최강 美 대통령의 허름한 뒷마당 연설… 인상적이었던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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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인 11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 산하 외신기자클럽이 보낸 e메일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버지니아 주 매클린 지역을 방문해 연설할 예정인데 와서 보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워싱턴 특파원이지만 미국 대통령을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4일 뒤인 15일 오전 9시 40분경 오바마 대통령이 오기로 한 중앙정보국(CIA) 옆 터너-페어뱅크 고속도로연구소를 찾았다. 백악관 경호대의 간단한 보안 검색을 거쳐 들어간 연설장은 붉은색 벽돌로 지은 연구소 건물의 뒷마당이었다. 평소 허드레 물건을 쌓아두었을 것 같이 허름한 공간에는 연구소 직원 200여 명이 대통령을 직접 보기 위해 일찍부터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신석호 특파원
신석호 특파원
백악관 측은 건물 벽면에 대형 성조기를 걸고 그 앞에 경호 및 통신장비가 실린 차량 4대를 세운 뒤 간이 연단을 설치했다. 첫 줄의 청중과 대통령 사이 거리는 1m도 안 돼 보였다. 청중석 뒤 철제 바리케이드 너머에 마련된 기자석도 연단에서 10m 안쪽 거리에 있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 현장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11시 45분경 연단에 섰다. 양복 상의를 입지 않은 그는 흰색 셔츠에 푸른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뛰어올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바로 경쾌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날 연설의 뼈대는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속도로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이 고속도로신탁기금 증액안을 비롯한 정부 발의 법안들을 빨리 처리하도록 국민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회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국민이 낸 세금을 축내면서까지 나에게 소송을 낼 생각만 하려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의회와 공화당을 표적으로 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보수적인 야당을 설득하고 달래 어찌됐건 나랏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장외를 돌며 국민을 상대로 화려한 연설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행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초라한 곳이라도 연설 주제에 어울리는 청중들을 찾아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모습은 사뭇 신선하게 다가왔다. 행사 전 며칠씩 꾸민 으리으리한 연설장에서 사전에 잘 교육받은 청중들을 향해 말하면서도 고작 대본 읽듯 ‘죽은 연설’을 늘어놓고 사라지는 한국의 대통령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
#오바마#미국#뒷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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