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앙금 털고… 영국에 화해의 손 내민 아일랜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아일랜드 대통령 첫 英 국빈방문

“우리는 과거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재가 더욱 소중합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우정과 친밀함을 성취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이 과거 독립전쟁기의 앙금을 털고 역사적인 화해에 나섰다.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8일 아일랜드 정부 수반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영국을 국빈 방문해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두 나라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며 “화합과 존중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자”고 역설했다.

7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 온 아일랜드는 1919∼1921년 2년 반에 걸쳐 처절한 독립전쟁을 벌였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게릴라전과 영국군의 잔인한 보복으로 두 나라에서 1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두 나라는 1921년 휴전을 하면서 아일랜드 남부의 26개 주의 독립을 허용하고 북부 신교 지역인 6개 주는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존속시켰다. 1950, 60년대 영국은 상점에 ‘아일랜드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걸 정도로 아일랜드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IRA는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투쟁은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협정’이 체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양국 관계의 급반전 돌파구는 201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열었다. 당시 아일랜드를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일랜드 독립투쟁 희생자 기념비에 헌화하며 갈등의 과거사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BBC는 “아일랜드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문은 20년 전에 성사될 수 있었는데 두 나라의 망설임 때문에 미뤄져 왔다”고 보도했다.

20대 시절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잉글랜드를 찾기도 했던 히긴스 대통령은 연설에서 “영국 사회에서 활약하는 아일랜드계 주민들의 존재에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북아일랜드 상황에 대해서는 “영구적이고 창조적인 화해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여정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날 런던 서부 교외의 윈저성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공식 만찬에는 히긴스 대통령뿐 아니라 마틴 맥기니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석장관(63)도 참석해 여왕을 위해 ‘역사적인 건배’를 해 눈길을 끌었다. 맥기니스 장관은 IRA의 사령관을 거쳐 반영 정당조직 신페인당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인물. 맥기니스 장관은 지난해까지 의원을 지내면서 여왕에게 충성 서약을 하는 절차를 문제 삼아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출석을 거부하는 ‘결석주의’ 운동을 주도해 왔다.

그의 영국 왕실 연회 참석에 대해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에 투항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렇지만 북아일랜드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대표는 “우리 당이 관용과 평등에 기반을 두고 미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방문”이라고 평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아일랜드#영국#엘리자베스#마이클 히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