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관계가 전례 없는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중-러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주의 종주국 지위 및 국경 획정을 놓고 대립했던 중국과 러시아가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시진핑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경제는 물론이고 국방 협력까지 강화하며 신(新)밀월시대를 열고 있다.
○ 경제-군사 투트랙 화끈한 협력
2박 3일 일정으로 22일 러시아를 방문한 시 주석은 도착 직후 푸틴 대통령과 약 3시간 동안 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유대관계를 확인하며 시리아 문제, 중동 분쟁, 이란 핵 문제, 북한 문제에서 공조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취임을 축하하고 러시아를 첫 번째 방문국으로 택한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시 주석은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왔다”며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시 주석은 모스크바 공항 도착 때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때는 하늘색 넥타이를 맸지만, 그 직후에 열린 ‘중국 여행의 해’ 행사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같은 붉은색 넥타이로 바꿔 맸다.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한 이미지 관리에 나선 것. 중국 언론은 “푸틴 대통령도 첫날 7시간을 시 주석과 함께했다”며 “양측이 이번 만남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20년 가까이 타결하지 못했던 러시아의 대중국 천연가스 공급에 전격 합의했다.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 국영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 2018년부터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30년간 연간 380억 m³의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공급하기로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연간 공급량은 향후 추가 협상 결과에 따라 600억 m³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의 지난해 천연가스 소비량 1400억 m³의 42%에 이른다. 시베리아 가스는 극동에서 중국 동북지역으로 수송된다. 러시아는 또 중국에 대한 원유 공급량을 지금의 연 1500만 t에서 3100만 t까지 늘리기로 했다. 양측은 이 밖에 30여 개 경제협력 문건에 줄줄이 ‘소나기 서명’을 했다.
시 주석은 방러 이틀째인 23일 러시아 국방부의 심장인 작전통제센터를 방문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합참의장)은 시 주석에게 “당신은 러시아 작전통제센터가 문을 열어 준 첫 번째 외국 지도자”라고 말했다. 작전통제센터는 육해공군과 핵전력을 지휘하는 곳. 군사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자는 러시아의 통 큰 이벤트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럽에 구축 중인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양국의 국방 및 군사기술 협력 확대 필요성을 논의했다. ○ 미국의 대중 포위망 뚫기
중국과 러시아의 급속한 관계 강화는 미국이 일본 대만 인도 호주를 잇는 대중 포위망을 형성한 데 대한 양국의 우려와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전략적 협력은 상호 정치적 지지를 강화하는 가운데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서로 돕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에 적극 화답하며 “양국의 핵심 이익을 상호 지지하자”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그동안 중국은 타국에 대한 불가침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영토와 주권을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이를 침해당할 때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점을 천명해왔다. 따라서 이번 양국 정상의 합의는 미국에 맞선 새로운 전략 동맹 형성에 이해가 일치했다는 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쿠릴열도 4개 섬을 놓고 일본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 배후를 미국으로 본다는 점에서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시 주석의 방러가 갈등 구조의 확대보다는 협력적인 대국외교를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이 새로운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추구하면서 중-미관계에서 대립보다는 상호이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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