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도 거머쥔 이집트 군부… ‘꼭두각시 대통령’ 나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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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 “총선 무효”… 의회해산령 파장

민주화 혁명으로 3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이집트가 16, 17일 이틀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치른다. 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퇴진 이후 16개월 만이다. 결선투표에 오른 두 후보가 박빙의 지지율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의회 해산령’이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해 대선 정국을 더욱 안갯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14일 하원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해산을 명령해 결선투표를 앞둔 표심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헌재는 해산령 외에도 ‘정치 격리법’이 위헌이라며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아흐마드 샤피끄 후보(71)의 결선투표 진출을 정당화했다. 정치 격리법은 지난 10년간 구체제하에서 고위 공직을 맡았던 이들은 대선 후보로 출마할 수 없도록 제한한 법으로 샤피끄 후보의 출마 논란에 불을 지폈다.

무슬림형제단은 헌재의 판결이 다분히 정치적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FJP)의 모하메드 엘벨타기 부총재는 “완벽한 쿠데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명청년연합을 비롯한 6개 자유주의 정당과 단체도 “대선 결선투표는 군부의 권력 연장을 합법화하려는 ‘쇼’일 뿐”이라며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61·FJP 총재)에게 결선투표 보이콧을 촉구했다.

샤피끄 후보 진영은 헌재의 판결에 더욱 탄력을 받았다. 판결 소식이 전해진 후 샤피크 후보는 “이 역사적인 판결로 ‘짜깁기법’(정치 격리법)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며 카이로 외곽에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고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TV가 15일 전했다. 샤피끄 후보의 출마 합법성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타흐리르 광장으로 뛰쳐나와 “샤피끄는 반혁명세력” “군부가 구체제 요소들을 하나씩 되살리고 있다”며 분노했다.

이번 대선은 ‘이슬람 세력 vs 구체제 인사’의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달 23, 24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지지를 받는 무르시 후보와 샤피끄 후보가 각각 1,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첫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총 498석 중 47%의 의석을,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알누르당이 25%를 차지했다. 그런데 선거법상 전체 의석의 3분의 1은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후보들에게 할당키로 되어 있는데, 독립 후보로 등록해 당선된 상당수가 정당 소속인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헌재는 이를 이유로 전체 의회 구성을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또 정치 격리법에 대해서도 “관직에 앉았다는 것 자체를 범죄로 규정할 수 없다”며 위헌 판결을 했다. 또한 “더구나 샤피끄는 법이 통과되기 전에 후보로 등록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의회 해산령이 떨어짐에 따라 1월 의회에 이양됐던 입법권은 다시 군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AP통신은 15일 “이번 2차 투표가 치러진 후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군부가 틀어쥔 행정권과 입법권이 정상적으로 넘어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구체제 인사 샤피끄 후보가 당선되면 군부가 권력을 순순히 넘겨줄 수 있지만 무르시 후보가 당선되면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AP통신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의회가 없는 동안 군부가 입법권을 행사하면서 새 헌법을 직접 제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해체되기 전 의회는 이집트의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초안조차 작성되지 않은 상태다. 헌법이 없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보장하는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결선투표에서 승리한다 해도 꼭두각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민주화#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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