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풀뿌리 민주주의’ 소리 없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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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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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200만여명 뽑는 선거 넉달째 진행중
黨추천 받지 않은 독립후보 수십만명 나설듯

중국 베이징 순이(順義) 구의 한 선거구에서 최근 기층 인민대표 선거 홍보 활동이 펼쳐
지고 있다. ‘인민을 위한 인민대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출처 런민망
중국 베이징 순이(順義) 구의 한 선거구에서 최근 기층 인민대표 선거 홍보 활동이 펼쳐 지고 있다. ‘인민을 위한 인민대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출처 런민망
“국민을 대신해 합법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정부를 감독하겠다.”

체육기자 출신으로 중국 축구계 비리의 내막을 파헤치고 지방정부의 묵인 아래 자행돼 온 강제철거를 강력히 규탄해 온 리청펑(李承鵬·43) 씨는 이렇게 출마 의지를 밝혔다. 그는 중국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시 한 선거구의 인민대표(구의원 격)에 출마한다.

중국 전역에서 7월 1일부터 5년마다 치러지는 ‘기층 인민대표 선거’가 한창이다. 최하급 인민대표인 기층 인민대표는 구현향진(區縣鄕鎭)에서 선출되는 의원을 통칭한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선거에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 후보’들이 대거 출마했다. 1당 독재체제인 중국 정치의 기존 판도를 깨는 새로운 풀뿌리 민주주의의 태동으로도 읽히는 현상이다. 공산당은 정책 비판 등 목소리를 높이는 이 독립후보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전국 31개 성시자치구 산하의 최하급 기초단체에서 이뤄진다. 해당지역 호구(戶口·호적)를 가진 주민이 투표하는 직접선거다.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200여만 명의 기층 인민대표가 선출된다. 장시(江西) 산시(山西) 산시(陝西) 광시(廣西) 신장(新疆) 등은 선거가 끝났으며 나머지 지역은 내년 말까지 끝내야 한다.

베이징(北京)에서 17년 동안 정치제도를 연구해온 민간기구 ‘세계와 중국연구소’(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독립 후보’가 대거 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콩 시사주간 야저우저우칸(亞洲週刊)은 과거 선거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라고 전했다.

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공산당 등 정당 지명 △공산당 산하의 군중단체 지명 △선거인 10명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다. 과거 절대 다수는 공산당 또는 군중단체가 지명하는 인사들이었다.


이미 선거가 끝났거나 진행 중인 곳에서만 1만 명 이상의 독립 후보가 출마한 것으로 연구소는 추정했다. 이대로라면 중국 전체에서 수십만 명의 독립 후보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소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통로로 의사를 표출하고 있으며 선거는 그 통로 중 하나”라며 “독립 후보의 증가는 중국 사회와 정부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점점 더 강렬해질 것이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독립 후보는 인권운동을 하거나 자유 민주를 주창해온 이상주의자가 대부분이어서 공산당에 껄끄러운 인사들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들의 출마와 당선을 막기 위해 협박과 탄압 등 각종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야저우저우칸은 전했다.

중국 정부가 기층 인민대표 선거에 주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조용히 진행하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 언론도 간간이 소식을 알릴 뿐 주요 뉴스로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 일정을 공고하지 않은 채 선거를 끝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투표소에 칸막이가 없어 누굴 찍는지 알려질 수 있어 비밀투표가 보장이 안 되고 개표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따라서 선거 열기도 매우 약하다. 한국인이 밀집한 베이징의 왕징(望京)이 속해 있는 차오양(朝陽) 구도 9월 중순부터 선거활동이 시작됐으나 벽보와 펼침막이 골목길에 간간이 붙었을 뿐이며 유세 등 선거 활동도 거의 없다.

이들 기층 인민대표는 해당 지방의 행정을 감시감독하고 한 단계 위의 인민대표인 성시자치구 인민대표에 대한 투표권을 가진다. 성시자치구 인민대표는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의 선거인단이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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