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청년 폭동]아버지의 눈물, 분노를 잠재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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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폭동에 아들 잃은 무슬림… “복수 대신 화합을” 호소
시위 나선 군중 발길돌려

10일 오후 영국 버밍엄 시 윈슨그린 지역 중심가. 흥분한 아시아계 이슬람 주민 150명을 한 남자가 막아섰다.

“아시아, 아프리카, 백인 사회는 하나로 통합돼야 합니다. 지역 사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진정해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폭력은 추방해야 합니다.”

그의 애끓는 절규에 “복수에 나서야 한다” “죽은 형제를 위해 가만있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군중은 숙연해졌다. 그는 이날 새벽 폭동이 한창일 때 아시아계 주민의 상가를 보호하기 위해 동료들과 순찰을 하다 돌진한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하룬 자한 씨(21)의 아버지 타리크 자한 씨(45)였다.

경찰에 체포된 32세 운전자가 계획적으로 아들 일행을 차로 덮쳤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그는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까지 들어 보이며 호소했다. “이번 사고는 인종 문제와는 무관하다. 더는 갈등이 없어야 한다. 더는 어느 누구도 죽어선 안 된다.”

파키스탄계인 자한 씨는 이날 새벽 지역 상가를 지키던 주민들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부상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하룬이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급히 가보니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이미 의식을 잃은 아들이 누워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비극을 담담하게 얘기하던 그는 “사고 후 인종과 종교, 배경 등을 망라한 지역사회 인사들로부터 위로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내 아들은 살았던 곳을 지키려다 죽었다. 우리 역시 이 지역사회의 일원이 아니냐. 지금 모두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눈물 어린 연설에 군중은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대신 이날 저녁 같은 장소에 촛불을 든 주민 200여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침묵의 평화집회를 가졌다. 그의 아들 외에도 이날 사고로 샤자드 알리(30), 압둘 무사비르 씨(31) 형제도 목숨을 잃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전날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동과 약탈이 벌어졌던 버밍엄과 브로미치, 울버햄프턴, 노팅엄 등 중부 도시는 더는 소요 없이 조용한 밤을 보냈다.

런던=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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