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청년 폭동]실업-빈곤-잿빛 미래… 시위 들불처럼 번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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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은 아무것도 없다”… ‘잃어버린 세대’의 분노 폭발

“그들은 아무것도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대공황 이후 자신의 미래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첫 세대다.”(켄 리빙스턴 전 런던시장)

영국에서 벌어진 폭동은 정치적 구호도, 뚜렷한 공격대상도 없다. 하다못해 ‘정권 퇴진’처럼 거의 모든 반정부 시위대가 주창하는 슬로건도 없고,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도 없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부수고 불을 지른다. 이런 무정형(無定形)의 폭동 앞에서 정부는 물론이고 대다수 기성세대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왜,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는가’라는 한탄 속에는 기성세대의 뼈아픈 자책과 반성도 섞여 있다.

청년들이 중심이 된 시위와 집단행동은 최근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 채무위기에 빠진 그리스, 스페인에서는 청년들이 정부의 긴축정책과 연금개혁에 거칠게 항의했다.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칠레에서는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다. 올해 초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의 주역도 청년들이었다. 각국 시위의 양상이나 폭력의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유사점이 발견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박탈감이 집단적인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 2008 세계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젊은 세대 분노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3년 전 세계 금융위기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10일 “2008년 경제위기가 지구촌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은 고용과 투자를 줄였고 각국 정부는 복지예산과 각종 보조금을 깎았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할 기회 자체를 잃어버린 젊은 구직 희망자들이 최대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들의 좌절감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는 청년실업률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15∼24세 평균 실업률은 18.9%다. 스페인은 무려 41.6%, 그리스는 32.9%를 기록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6월 현재 16∼19세 실업률이 24.5%로 전체 실업률(9%)을 크게 웃돌았다. 이처럼 국가부채 위기에 빠진 대부분의 국가는 전체 평균 실업률보다 청년 실업률이 2배 이상 높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미국 공영 NPR방송은 “높은 청년실업률이 수년간 고착되면서 ‘잃어버린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디그나도스(indignados·분노의 시민운동)도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에서 출발했다. 금융위기 이후 긴축재정으로 인한 사회복지의 감소도 서민층 젊은이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말 영국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는 정부가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보조금을 줄이면서 시작됐다.

○ 베이비 부머 풍요에 상대적 박탈감

젊은 세대의 좌절감 한쪽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가 20세기 후반 경제발전과 복지의 과실을 마음껏 누려온 데 비해 이들의 자녀 세대인 현재 젊은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구직난과 재정난뿐이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기성세대들은 대학 등록금도 저렴했고 졸업 후 일자리를 찾기도 쉬웠으며 연금도 보장을 받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며 “젊은이들 중 어느 누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게다가 금융위기의 값비싼 대가를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신들이 치르고 있다는 사실도 이들에겐 참을 수 없는 요소다. 경제정책에 실패해 위기를 초래한 정치인들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무분별하게 파생상품을 판매해 시장을 교란시킨 금융사들도 지금은 다시 ‘보너스 파티’를 즐기고 있다. 1년 2개월째 세계 최장기간의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벨기에에서 유독 학생들의 시위가 잦았던 것도 기성 정치권에 대한 짙은 염증에서 비롯됐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서유럽에선 연금 등 사회보장성 세금 부담이 고스란히 청년층으로 전가되면서 앞으로 세대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리스에서 오늘날 성인이 된 세대는 과거 세대들이 벌인 ‘신용잔치’의 계산서만 받게 될 것”이라며 “냉전 뒤 세대의 충돌이 찾아왔다”고 분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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