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사고 진실 밝혀라” 中국민 집단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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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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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있나. 정말로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

고속철 추돌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26일 저장 성 원저우 시에서 만난 리샤오밍(李小明) 씨는 현지의 격앙된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공산당 일당 독재 아래에 있는 중국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분노’라고 표현하는 건 흔치 않다. 고속철 신화의 붕괴에 대한 배반감과 사고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정부의 무능력 및 은폐 의혹이 집단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5일 밤 원저우 세기광장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진상을 알고 싶어 왔다. 정부는 이번 사고에 대해 마땅히 반성하고 교훈을 찾아야 하는데 왜 자꾸 책임을 모면하려 하느냐”고 말했다. 집회에는 시민 1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중국에서 집회를 하려면 공안국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

이에 앞서 사고 피해자 유가족 등 100여 명은 24일 밤 원저우 시청사로 몰려가 책임자 면담을 요구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정부가 우리를 갖고 놀고 있다. 왜 사과하는 사람이 없느냐”며 청사 진입을 시도했다. 이번 사고로 임신 7개월의 부인과 장모 처형 처조카를 잃은 양펑(楊峰·32) 씨는 “정부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48시간이 지났지만 철도부 직원 누구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도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한 여성 누리꾼은 써우후(搜狐)닷컴에 올린 글에서 열차 잔해 더미에서 구출된 30개월 된 샹웨이이 양을 거론하며 “중국에서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투표권이 없어서 너에게 인간의 존엄을 얻을 수 있게 할 수도 없고, 진정한 법률 보호가 없어 네가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들은 웨이보에 올린 글에서 “원 총리가 자연재해 현장에는 가면서 인재 현장은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원 총리를 비판하는 글은 이날 수백 건에 달했다. 중국에서는 국가 수장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금기시돼 왔다. AFP통신은 26일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시민들의 분노가 ‘정치적 선’을 넘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관영매체도 이 같은 기류에 조심스럽게나마 동조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고속과 안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며 이른바 ‘중국 속도’에 대한 자성론을 제기했다. 환추시보는 사설에서 “고속철 사고 이후 여론은 중국의 전반적인 발전 속도 자체에도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저우=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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