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외교, 中-러에 협공당하는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3일 03시 00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이어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까지 영토분쟁에 휘말린 일본 외교정책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일간지는 2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을 “우호적 관계를 무력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의 외교력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의 협공에 놓이게 된 이유로 △정권교체 이후 흔들리고 있는 미일동맹 △외교 강경론자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의 입 △중-러 외교 파이프라인의 와해 등이 지목된다.》

일본 외교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의 동시에 일본과 영토분쟁에 나선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정권교체 이후 들어선 일본 민주당 정권이 오키나와(沖繩)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두 나라가 이 틈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집권 직후 후텐마 기지를 같은 현의 헤노코(邊野古)로 이전하기로 한 양국 합의를 보류하면서 미일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간 내각은 기지 이전을 양국 합의대로 추진하려 하지만 수용불가를 주장하는 오키나와 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 기지 이전 반대표가 몰릴 경우 후텐마 문제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일본 외교전문가들은 “한번 어그러진 미일동맹의 재구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은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어 사방팔방이 꽉 막힌 상태”라고 지적한다.

원칙론에서 물러설 줄 모르고 연일 주변국에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마에하라 외상의 태도도 문제다. 센카쿠 분쟁의 발단이 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양순시선의 충돌 사건은 초기 대처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음에도 마에하라 외상이 중국인 선장 구속을 강력히 주장해 일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센카쿠는 합법적인 일본 땅”이라며 원칙론을 굽히지 않아 중국의 반발을 샀다.

또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불법 점거하고 있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를 두고 같은 민주당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조차 “옳은 말을 하더라도 상황과 때를 봐가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며 마에하라 외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비공식적 외교 파이프라인이 붕괴돼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일본의 외교력도 문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이 54년 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외교의 뒷무대에서 속내를 드러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이번에 불거진 러시아 대통령의 쿠릴 열도 방문 문제도 과거 자민당 시절처럼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중의원 의원 등 러시아통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도쿄=김창원 특파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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