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민족충돌 확산… 내전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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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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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슈市 화염-총성 최소 100명 사망
정부 비상사태 선포… 軍발포 허용

쫓겨난 대통령 두고 찬반 갈등
우즈베크 국경 대규모 피란행렬

민족 분규로 촉발된 키르기스스탄의 유혈충돌 사태가 격화되면서 사실상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13일 키르기스스탄 보건부와 AP통신에 따르면 10일 저녁 남부 오슈 시에서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키스탄계 청년들이 유혈 충돌해 현재까지 최소 100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했다. 한 카지노에서 시작된 양측의 충돌이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이날도 도시의 건물과 차량 상당수가 화염에 휩싸였고 거리 곳곳에서는 총성이 오갔다. 피로 물든 시신들이 거리에 나뒹구는 장면도 CNN방송에 포착됐다. 오슈 시민들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있다”며 “여기는 전쟁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슈의 소요는 남부도시 잘랄아바트를 비롯한 인근 다른 지역은 물론 북부의 수도 비슈케크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AP와 AFP통신 등은 주변 마을에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키르기스계 청년들이 무장한 채 남부 지역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자 오툰바예바 수반이 이끄는 키르기스스탄 과도정부는 잘랄아바트 및 인근에 국가 비상사태와 24시간 통행금지 조치를 선포하고 폭도에 대한 군과 경찰의 발포를 허용했다. 또 다른 지역에 주둔 중이던 군대 일부를 남부로 이동시켰다. 정부는 포고령을 내리고 “확산 일로인 폭력과 약탈 대학살을 막아야 한다”며 무기사용 승인 배경을 밝혔다.

오툰바예바 수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군사 개입을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군대를 투입할 계획은 없다”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남부는 전체 550만 명의 국민 중 15%를 차지하는 우즈베크계와 키르기스계의 갈등이 계속돼온 지역이다. 더구나 올해 4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축출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여서 정권교체 이후 정정 불안 수위가 높아졌다. 우즈베크계는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반면 키르기스계는 바키예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전문가들은 과도정부 수립 후 이 지역에서의 내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오툰바예바 수반은 “바키예프 세력이 뒤에서 소요를 조장했다”며 비난했고, 벨라루스에서 망명 중인 바키예프 전 대통령은 “과도정부의 무능함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맞섰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우즈베크 여성과 어린이 등 3만2000여 명은 우즈베키스탄 국경지역으로 피신하고 있다. 대규모 피란 행렬에 휩쓸린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유럽연합(EU)은 인권 전문가를 현지에 급파했다. 키르기스스탄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은 특히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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