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하원의장 314년만에 첫 중도사퇴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의원들 주택수당 부당청구 스캔들 책임”
법무차관 사임 이어 브라운총리도 구설수 올라

영국 의원들의 주택수당 불법청구 스캔들이 급기야 하원의장 중도 사퇴로 이어졌다.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사진)은 19일 “의회의 책임자로서 의원들의 주택수당 불법청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6월 21일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새 의장은 6월 22일 선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에서 하원의장이 중도 사퇴한 것은 1695년 존 트레보 의장이 입법의 대가로 뇌물을 받아 물러난 이후 314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샤히드 말릭 법무차관이 15일 불법청구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데 이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구설에 휘말린 상태여서 당분간 영국 정계에 주택수당 스캔들 여파는 쉽사리 가라않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언론들은 최근 여야 의원들이 무분별하게 주택 수당을 챙겨온 관행을 집중보도했으며, 야당인 보수당 의원들은 마틴 의장의 책임론을 거론해왔다. 또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 닉 크레그 당수가 17일 공개적으로 의장의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의원 23명이 의장 불신임 동의안에 서명하는 등 사퇴를 압박해왔다.

영국 정부는 지역구가 런던에서 떨어져 있는 의원에게 지역구 집 또는 런던의 임시주택 가운데 한 곳을 정해 ‘주택수당’을 지급한다. 공무로 집을 떠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집세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이자, 공공요금 등을 연간 최대 2만4000파운드(약 4500만 원)까지 보조해준다. 하지만 이번에 일부 여야 의원들이 주택수당을 실제 비용보다 부풀려 신고한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실제 하원의원이기도 한 말릭 법무차관은 런던의 임시 주택에 대한 수당을 3년간 6만7000파운드로 부풀려 청구한 의혹을 받고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브라운 총리도 배관수리 비용을 두 번 청구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부부인 앤드루 매케이 보수당 의원과 줄리 커브라이드 보수당 의원은 각각 지역구의 집과 런던의 집에 대해 8년 넘게 주택수당을 이중으로 청구해왔다.

18일까지만 해도 야당의원들의 거센 사퇴요구에도 불구하고 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혔던 마틴 하원의장이 전격 사임한 것은 이처럼 영국 의원들의 부도덕한 처신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마틴 의장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해 온 보수야당의 더글러스 카스웰 의원은 “영국 시민들은 의원들을 시민들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기생충으로 보고 있다”면서 “의회 지도력을 상실한 마틴 의장의 사퇴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틴 의장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주택수당 스캔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마틴 의장을 속죄양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지난달 2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여당인 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는 35%였으나 지금은 야당보다 15∼20%포인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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