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로우, 올해의 단어 될까

  • 입력 2009년 3월 23일 18시 20분


대량해고에 대한 대안으로 무급휴직이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대량해고에 대한 대안으로 무급휴직이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사전업체 매리엄-웹스터사는 지난해 말 인터넷사전의 검색 횟수에 기초에 '구제금융(bail-out)'을 2008년의 단어로 선정했다. 경제위기에 대한 미국 국민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2009년을 대표하는 단어는 무엇이 될까? 아직 '대표 단어'를 고르기엔 이르지만 '무급휴가(furlough, 펄로우)'가 유력한 후보가 될 공산이 크다.

네덜란드어 'Verlof'에서 비롯된 '펄로우'의 사전적 의미는 '자의건 타의에 무관하게 잠시 근무지에서 이탈하는 휴가'의 뜻. 최근 경제 난국에서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들이 위기 극복을 위한 최후의 카드로 '펄로우'를 강제하면서 이 단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 세계적 '펄로우' 붐

지난해 말부터 불어 닥친 '펄로우' 붐은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업들은 지난해 연말부터 직원들에게 일주일에서 최대 2주에 이르는 무급휴가 사용을 권고해왔다. 일부에서는 1~3개월의 무급휴가도 사용되고 있다.

세계1위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는 최근 1700명의 감원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전 직원에게 무급휴가를 권유했다. 미국의 시스코 시스템즈, 델, HP 등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도 무급휴가 제도를 폭넓게 실시하고 있다. 폭스바겐, 도요타 등 세계적 자동차 제조업체와 케세이 퍼시픽 같은 항공사들도 무급휴가를 통한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펄로우' 붐은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분야에서도 확산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23만5000명의 공무원들이 한 달에 이틀씩 무급휴가를 가고 있고,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청은 금요일엔 아예 문을 닫는다. 애틀랜타 시청 공무원 5000명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매일 평소보다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의 무급 주말을 얻는다. 미국 내 주요 관공서들과 대학의 주 4일 근무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약 10% 정도의 인건비 절약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아닉스 반도체는 이달까지 이미 전 직원의 80%가 약 2주간의 무급휴가를 사용했다. GM대우나 쌍용자동차 하청업체들도 대부분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독려하고 있다.

● 자발적 휴가에서 강제성 휴가로 변한 '펄로우'

경기가 좋던 2007년까지만 해도 '펄로우'를 받는다면 곧장 장기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답한 근로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2009년의 상황은 그 때와 180도 달라졌다. 과거엔 '펄로우'가 '자발적 장기휴가'의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의 펄로우는 '해고 직전의 상황'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애당초 무급휴가는 원래 광업이나 자동차제조업 등의 경기에 심하게 영향을 받는 블루칼라 업종에서 주로 시행됐다. 공장 문을 닫게 되면 자연스레 노동자들은 장기 휴가 상태에 돌입했기 때문. 그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화이트칼라 업계에서도 인건비 절약 차원의 휴가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무급휴가 제도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인건비 절약 효과다. 강제 무급휴가는 2주의 경우 약 4.5%, 3주는 약 6.5%의 임금삭감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근로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사측의 무급휴가 제의를 받아들이는 노동조합은 이구동성으로 "동료가 해고되는 상황보다 무급휴가를 가는 쪽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펄로우'는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경우가 많으며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실제 경기 침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의 종업원들은 이 같은 무급휴직의 무분별한 확산에 대해 우려를 표시할 수밖에 없다. 무급휴가를 실시한다는 자체가 회사의 경영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고, 앞으로 해고가 없다는 사실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펄로우' 제도 확산을 전한 로이터 통신은 "무급휴직이 새로운 해고방식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실제 무급 휴직 기간 중에 회사의 상황이 더 나빠질 경우 원래 일하던 부서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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