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실로비키’ 지고 ‘페테류리스트’ 뜬다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메드베데프 내일 취임… 크렘린 ‘권력이동’

‘왕의 남자들’과 ‘상왕(上王)의 남자들’은 어떻게 힘을 나눠 가질까.

7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크렘린의 권력 축이 꿈틀거리고 있다.

8년 동안 크렘린에서 러시아를 좌우해 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8일 의회의 인준을 받은 뒤 4km 떨어진 총리실로 자리를 옮긴다. 메드베데프 당선자 측은 ‘푸틴 시대의 실세들을 바꾸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벌써부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메드베데프 당선자가 크렘린에 입성하면 푸틴 사단의 핵심층을 구성했던 실로비키(정보기관과 군인 경찰 출신 정치인)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푸틴 대통령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출신이지만 메드베데프 당선자는 이들과 거리를 두어 왔다.

일간 베르시야는 “메드베데프와 대권 경쟁을 벌였던 실로비키의 대표주자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는 자리를 바꾸지 않더라도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로비키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불렸던 이고리 세친 대통령 행정부실장도 푸틴 대통령을 따라 총리실로 갈 것으로 보인다.

실로비키가 떠난 자리는 메드베데프 당선자의 대학 선후배들이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메드베데프 당선자는 19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0∼1999년 이 대학 민법 강사로 일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이 때문에 앞으로 ‘페테르부르크’와 ‘유리스트’(법률가)의 합성어인 ‘페테류리스트’(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과 출신 법률가)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메드베데프 당선자의 동급생인 콘스탄틴 추이첸코 가스프롬 법무실장과 니콜라이 비니첸코 연방법원 국장은 부총리 물망에 올라 있다.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이들이 크렘린과 총리실을 오가며 실세 총리와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장관직에 오를 것이 유력한 안드레이 아키모프 가스프롬은행장, 올레그 사포노프 극동대통령전권대표, 알렉산드르 코노발로프 볼가대통령전권대표 등도 모두 메드베데프 당선자와 대학 동문이다.

메드베데프 당선자는 푸틴 대통령과 상의하며 이 인사들을 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력 교체를 앞두고 크렘린은 지역 전권대표를 총리의 지휘 아래에 두는 한편 총리실의 의전 및 홍보 기능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켜 일찌감치 총리의 위상을 높여 놓았다.

메드베데프 당선자는 실세 총리와 권력 분할을 끝내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인사만 하고 정국 안정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대외정책도 푸틴 대통령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외정책의 실무를 총괄하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도 ‘유임’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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