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여성인질 풀어주려 했다"

  • 입력 2007년 8월 7일 13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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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6명을 포함한 한국인 23명을 납치, 남자 인질 2명을 살해한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이 당초 여성 인질들은 풀어주려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사건 초기 아프간에서 취재한 바 있는 압델 마흐무드(가명) 기자는 6일 본인의 신원과 소속 언론사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응한 인터뷰에서 그 같이 주장했다.

중동 지역 유명 언론사의 파키스탄 주재 특파원인 그는, 탈레반으로선 여성 인질 관리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이어서 풀어주려 했으나 인질들이 기독교 선교를 위해 왔다는 외신보도가 나온 뒤에 입장을 바꿨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또 탈레반이 여성 인질들의 경우 절대 죽이지 않고 적절한 계기가 주어지면 석방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 정부의 탈레반과의 적극적인 직접 협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년 가까이 서아시아 지역에서 특파원 생활을 해온 그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과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기자와의 대화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인 피랍 사건을 지금도 취재하고 있나.

▲한 달 동안 휴가를 낸 동료를 대신해 카불 주재 근무를 하던 중 납치 사건이 터졌다. 현장에서 취재한 기간은 사건이 발생한 7월19일부터 5일 간이다. 지금은 이사건 취재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디 대변인과는 수시로 통화하고 있다. 내가 걸지 않고 그쪽에서 필요하면 전화를 해 온다.

-사건 초기에 취재했던 것을 말해 달라.

▲탈레반은 애초 여성 인질들을 풀어 주고 싶어 했다. 여성 인질들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잠자리, 샤워 문제 등을 생각해 봐라. 탈레반은 파슈툰족의 전통을 중시하고, 이슬람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여성과 함께 있는 것도 금기시하는 게 그들의 문화다. 여성인질 관리는 탈레반에 골치 아픈 문제였다. 탈레반은 여성 인질들을 관리할 자원이 없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따르면 여성 인질은 여성이 지켜야 하는 데 탈레반에는 여성 가드(Guard)가 없다. 사건 발생 직후 아마디 대변인과 통화했을 때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여성인질 석방이 왜 무산됐나.

▲인질들의 정확한 신원이 공개된 것이 문제였다. 모 서방 통신이 익명의 한국 외교부 관리를 인용해 인질들로 잡힌 사람들이 `미셔너리 크리스천(Missionary Christian)'이라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들이 단순 관광객이나 비정부기구(NGO) 요원이아니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다. 내가 초기에 아마디 대변인에게 "혹시 관광객은 아니냐"고 물으니까 "아프간에는 관광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탈레반은 인질들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기독교 선교사임을 언론 보도로 확인한 뒤 입장을 바꿨다. 아마디 대변인은 문제의 보도가 나온 뒤 여성 인질을 남성과 똑같이 대우하겠다고 말했다. 인질들의 신원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여성 인질들은 풀려났을 것이다.

-탈레반이 모든 뉴스를 모니터링하나.

▲놀라울 정도다. 특히 와이어(서방 뉴스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뉴스)를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한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인질 구명을 위해 외교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인질 석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을 꼽는다면.

▲한국 정부가 사건 발생 직후 기민하게 협상단을 카불로 보냈지만 탈레반과 집적 접촉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 협상단이 아프간에 도착해 1~3일 안에 탈레반을 만났으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 한국 협상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아프간 정부가 막았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는 한국 협상단이 탈레반을 직접 접촉하는 것을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고, 한국 정부는 아프간 정부의 인질이 됐다"는 말도 나왔다. 아프간주재 한국 대사나 그 어느 누구라도 탈레반을 직접 접촉해 협상에 임했으면 선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탈레반이 인질을 죽일 수 있다고 계속 위협하고 있는데.

▲여성 인질은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협상이 장기화해 병으로 죽을 수는 있다. 그리고 시한을 여러 차례 넘긴 것은 한국인 인질을 모두 죽이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이 있다면.

▲한국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마주앉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탈레반은 지금도 남성 인질과 분리해 여성 인질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싶어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탈레반에 여성 인질은 부담이 된다. 지금 협상 장소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탈레반이 요구하는 유엔의 안전보장은 미국 때문에 이뤄지기 어렵다. 한국 협상단이 눈치보지 말고 탈레반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단언컨대 한국 협상단이 인질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협상단에 미국 세력이 낀다는 오해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파슈툰 사람들은 차 한 잔을 함께 한 손님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은 좋았지만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를 의식하지 말고 인질 협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올해 인질사태를 겪었던 독일이나 프랑스 정부는 겉으로는 테러세력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면에서 할만한 접촉을 다 했다.

-탈레반이 인질과 동료 수감자 맞교환을 요구하는 한 협상을 해도 타결이 어렵지 않은가.

▲한국 협상단이 직접 접촉하게 되면 아마도 탈레반은 다른 요구를 내놓을 것이다.

-다른 요구라면.

▲몸값이 될 수 있다. 탈레반은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거래의 명분으로 몸값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은 한국이 철군계획을 밝힌 뒤 인질과 동료 포로의 맞교환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한국이 들어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남자 인질들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가 맞교환에 응하지 않으면 무사히 풀려나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 인질 문제는 아주 오래 갈 수도 있다. 여성과 남성 인질들은 결국 분리돼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협상이 잘 안될 경우 군사작전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무력 사용은 인질 모두를 죽이는 길이다. 한국 대표단이 초기에 이를 막는 데 주력한 것은 잘한 일이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맞교환 협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아프간과 미국은 `더러운 게임(Dirty Game)'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레반의 이미지에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려 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들이 목표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인질이 죽는 것이 탈레반과 싸우고 있는 아프간 정부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가 탈레반의 잔혹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인 인질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인 인질들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있나.

▲카불에 있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건강이 악화한 여성 2명이 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오늘 들었다.

-이번 사태 해결에 파키스탄 정부의 역할론이 거론되는데.

▲파키스탄 정부와 탈레반은 적대관계다. 9.11 사건 이전의 관계를 근거로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억측일 뿐이다. 가즈니주지사가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 요원 중에서 우루드어(파키스탄 공용어)로 통화한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에 대한 파키스탄 정보부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던 데, 그것은 이번 인질 사태의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한 발언이다. 현 아프간 정부는 치안유지 등 기본적인 정부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끌어 들이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탈레반은 미국과 손잡은 파키스탄 정부와 연결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인질사태 해결에 파키스탄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없지만 개입하려 한다면 탈레반을 자극해 더 나쁜 결과만 낳을 것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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