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밀 유출자를 찾아내라” 케네디, 기자 불법도청 지시

  • 입력 2007년 6월 29일 03시 01분


‘뉴 프런티어’를 외치던 자유주의 정치인의 상징 고(故) 케네디(사진) 대통령이 언론 사찰을 지시했다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6일 비밀 해제한 문건에 존 F 케네디 행정부 시대의 전화 도청과 언론 사찰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케네디 행정부의 CIA가 ‘프로젝트 마킹버드(mockingbird·다른 새의 노래를 따라하는 흉내지빠귀)’라는 제목의 도청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63년 3월. 당시 워싱턴에서 활동하던 칼럼니스트 로버트 앨런, 폴 스콧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특종 기사를 잇달아 내놓았다.

CIA는 두 기자의 자택과 사무실 등 3곳의 전화를 1964년 5월까지 14개월간 도청했다. 미 언론은 CIA 극비자료라는 점에서 법원 영장을 통한 감청이 아닐 확률이 크다고 전했다.

케네디 대통령과 존 매콘 CIA 국장의 백악관 집무실 대화 녹취록에도 언론 사찰을 위한 도청을 논의하는 대목이 나온다.

밀러공공정책센터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녹취록에 따르면 케네디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기자인 핸슨) 볼드윈 비즈니스는 어찌됐느냐”고 물은 뒤 “정부 기밀이 언론에 새는 것을 차단할 국내 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는 그의 친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도 배석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볼드윈 기자는 당시 “소련이 대륙 간 탄도탄 발사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콘크리트 장벽을 짓고 있다”는 등 CIA 정보평가를 인용한 특종기사를 자주 썼다.

CIA 보고서는 불법 언론인 사찰에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도 국방정보국(DIA)을 통해 협조했다고 적고 있다.

감청 결과 두 언론인에게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상원 의원 12명, 하원 의원 6명, 의회 보좌관 21명, 백악관 부통령실 고위관리 및 법무부 간부를 포함한 행정부 관리 다수였다. 누가 기밀 유출자인지는 보고서에 적시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두 기자가 넘겨받은 정보가 넘쳐났다”며 “이런 기삿거리는 다른 동료 기자에게 넘겨져 기사화됐으며, 때로는 두 기자가 작성한 뒤 제3자의 바이라인(byline·기사작성자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취재기자 블로그를 통해 “케네디 때의 불법도청 전통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영장 없는 감청으로 이어졌다”는 글을 올렸다. 마침 문서 공개 이튿날인 27일 상원 법사위는 ‘테러리스트의 국제전화가 미국 내로 걸려올 때 법원의 영장 없이 CIA가 감청했다’는 논란을 다루기 위해 백악관 관리를 청문회에 소환했다.

일부 누리꾼은 “알 카에다 조직원의 전화를 감청하기 위해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사용된 것은 언론인 사찰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반론성 댓글을 올렸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