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에서 온 ‘돌로 쓴 시’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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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과 종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식사 때 나오는 스티로폼 컵에 작은 돌멩이로 글씨를 새기고, 치약을 잉크 삼아 썼다. 쿠바 관타나모 수감자들이 시(詩)를 쓴 방법이다.

이렇게 쓰인 17명의 시 22편이 8월 미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아랍어로 쓰인 이 시들은 영어로 번역돼 ‘관타나모에서 온 시-수감자들이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수감자의 변호사들이 모은 시들이다.

미군은 몇 년 동안 “외부 테러세력에 보내는 암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시집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방부의 검열을 거치는 조건으로 아이오와대 출판부를 통한 출간을 허락했다.

‘나무 위 비둘기들의 울음에/온 얼굴이 눈물범벅/종달새 지저귈 때/아들에게 주는 메시지 떠올라/오, 신이여 나는 고통받는 자/절망 속에 의지할 사람 당신뿐’(새미 알 하지)

수감자들의 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기약 없이 갇혀 있는 데 대한 두려움과 절망감, 수감 생활의 애환 및 종교에 대한 간절함 등을 담고 있다.

‘미국, 너는 고아를 등쳐먹고/매일 위협하는 존재’라고 쓰는 등 미군을 향한 적대감과 분노를 드러낸 내용도 있다.

수감자들은 “시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다”며 “보는 이가 없어도 편지를 병에 넣어 망망대해에 흘려보내는 심정으로 적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판되는 시들은 시 전문 번역사가 아니라 안보 분야 암호해독 전문가인 언어학자 등의 손을 거쳐 번역됐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은 원작의 미묘한 여운을 살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제프리 고든 미 국방부 대변인은 “수감자들의 시가 순수한 예술적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서방의 민주주의에 맞서려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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