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영아]“위안부쯤이야” 아베 ‘외교 교사’의 망언

  • 입력 2007년 6월 7일 03시 00분


“20세기는 모든 지역에서 인권이 침해당한 시대였다. 일본도 거기서 무관할 수 없었다.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던 위안부 분들에게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일본 총리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4월 말 방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정치인들 앞에서 ‘사죄’한 내용은 이랬다. ‘사죄의 대상이 왜 미국이냐’는 지적은 있었을지언정 당시 사죄 자체의 의미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애매한 발언 속에 “우리만 잘못했느냐, 너희는 더했던 것 아니냐”는 행간의 의미가 깔려 있었음을 일깨우는 발언이 나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아베 총리의 ‘외교 가정교사’로 불리는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전 태국 주재 대사가 5일 도쿄에서 가진 강연에서 밝힌 내용이 그것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자키 전 대사는 이 강연에서 “20세기에 중국에서는 수천만 명이 죽었고 (옛 소련의) 스탈린 숙청도 수백만 명을 희생시켰다. 미국도 원자폭탄 투하와 드레스덴 공습을 저질렀다”며 “일본의 위안부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아베 총리가 미국에서 일본의 위안부 문제 책임을 언급했던 배경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또 아베 총리가 방미를 앞두고 미국 언론과 인터뷰할 때 “‘20세기는 인권 침해의 시기’라는 문구를 전부 사용하라”고 자신이 조언했다고 밝혔다.

오카자키 씨는 아베 총리의 ‘외교 과외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를 코치했다는 일종의 자랑도 섞어 한 얘기였지만, 그의 말은 서구 언론으로부터 몇 번이나 지적당한 아베 총리의 ‘더블 토크(이중 화법)’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에게 사죄의 필요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가 그 같은 ‘레토릭(수사학)’을 적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어찌됐건 강연에서 그는 “위안부 문제는 끝났으며 앞으로 미일관계에서 다시는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일본 정부는 무시할 것이며 미국이건 누구건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의 전망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잘못을 놓고도 상대의 허물에 빗대 자기 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일본 정치인들의 태도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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