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명의 넋인 듯… ‘悲’에 젖은 캠퍼스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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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상처를 치유하자” 버지니아공대 대학신문이 19일 한인 3명이 이 대학 잔디밭에서 열린 총기 난사 사건 추모행사에서 헌화한 뒤 오열하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상처) 치유를 시작하며’라는 제목이 보인다. 블랙스버그=연합뉴스
“이젠 상처를 치유하자” 버지니아공대 대학신문이 19일 한인 3명이 이 대학 잔디밭에서 열린 총기 난사 사건 추모행사에서 헌화한 뒤 오열하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상처) 치유를 시작하며’라는 제목이 보인다. 블랙스버그=연합뉴스
19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하늘에는 아침부터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사흘 전 무고한 32명의 목숨이 스러져 간 바로 그곳.

그날의 슬픔에 하늘이 흐느끼는 것일까.

대학본부 앞 대형 잔디 운동장인 드릴필드의 쌀쌀한 공기는 곧 작은 빗줄기로 바뀌며 캠퍼스를 추적추적 적셨다.

사건 발생 후 사흘이 지나면서 캠퍼스는 겉으론 평온을 되찾는 듯하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추모객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이어졌다.

학교 운동장에는 큰 대형 천막 4개가 쳐져 있다. 천막 안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글을 담은 추모 게시판이 진열돼 있다.

‘You'll never be forgotten but always missed(넌 결코 잊혀지지 않을 거야. 우린 항상 널 그리워할 거야).’

‘You were taken too soon(하느님이 널 너무 일찍 데려갔어).’

‘We love you all(모두 사랑해).’

‘My prayer are with you(널 위해 기도할게).’

빼곡히 적힌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흐느끼는 사람들.

추모 글을 써 내려가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게시판을 붙들고 조용히 눈물 흘리는 여자 대학생, 서로 부둥켜안고 위로하는 가족들, 두 손을 꼭 잡은 채 게시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젊은이들….

환하게 웃는 고인의 사진과 평소에 좋아하던 곰 인형, 즐겨 입던 티셔츠가 조화(弔花)에 둘러싸여 슬픔을 더하고 있다.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대학본부 앞에 마련된 헌화 탑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촛불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수많은 조화와 함께 빨간 풍선과 파란 풍선, 조그만 나무 십자가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정말 사랑스러운 너,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거야.’ ‘호키(Hokie, 칠면조 마스코트-대학 심벌)는 결코 죽지 않아….’

대학본부인 버러스홀 옆에서 한 블록만 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노리스홀.

조승희가 수업 중인 학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이 건물 주변에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 띠가 길게 쳐져 있었다. 범행 현장엔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 봉쇄돼 있고 주변에는 경찰 차량이 상주한다. 경찰관 3명이 건물 앞을 지키며, 사건 현장인 2층은 밤중에도 환하게 불을 켜 놓는다.

노리스홀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대학 기숙사.

많은 학생이 학교를 떠난 탓에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스산하기까지 했다.

조승희가 먼저 2명을 사살한 웨스턴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로 통하는 출입문에는 취재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빨간색 경고 표지가 붙어 있다. 그가 살았던 기숙사 하퍼홀은 이날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이날 밤 12시경 다시 찾은 학교 운동장.

깜깜한 밤인데도 게시판을 기웃거리며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교정 한 귀퉁이에 마련된 조화 헌정대를 찾은 이 학교의 강사 제러미 개럿(공학 전공) 씨는 “이번에 사망한 중국계 헨리 리가 나의 제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목요일에 헨리가 듣던 수업 시간이 돌아온다”며 “그때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블랙스버그=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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