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혼낸 여중생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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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비타민음료냐,설탕물이지”

《14세 여학생들이 학교 숙제를 통해 세계적인 식품제약회사가 평범한 음료를 판매하면서 건강 음료라고 허위 광고를 해 온 사실을 밝혀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끌어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지방법원은 27일 다국적 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2002년부터 5년간 ‘리베나’ 주스의 비타민C 함량을 허위 광고하는 등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15만6000달러(약 1억5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리베나는 글락소의 대표 브랜드로 세계 20여 개국에서 판매 중이다.》

AP와 AFP통신이 28일 보도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04년 당시 14세였던 애너 데바타산 양과 제니 수오 양은 ‘리베나에 비타민C가 그렇게 많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GSK는 리베나의 원료로 포도의 일종인 블랙커런트의 비타민C 함유량이 오렌지의 4배라며 리베나를 건강 음료로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다. 뉴질랜드 광고에서는 리베나의 비타민C 함유량이 100mL당 7mg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두 여학생은 과학 시간 과제물로 리베나의 비타민C 함량을 조사했고, 놀랍게도 리베나에는 비타민C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리베나의 비타민C 함유량은 다른 과일 음료보다 오히려 낮았다.

소송 과정에서는 리베나가 코카콜라보다 설탕 함량이 더 많은데도 건강 음료로 마케팅을 해 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두 친구는 실험 결과를 GSK 측에 제시했지만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수오 양은 “회사에서는 우리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여학생의 과제물은 소비자 문제를 다루는 현지 TV 프로그램에 소개됐고 이를 본 소비자단체 상업위원회가 이들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했다.

GSK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정정 광고를 게재하는 한편 자사 웹 사이트에 허위 광고 경위를 안내해야 하는 망신을 당하게 됐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GSK의 주가도 떨어져 런던 주식시장에서는 0.1% 떨어진 27.27달러에 거래됐다.

데바타산 양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4세 나이에 GSK 같은 거대 기업을 날려 버리는 일을 해냈다니 꿈만 같다”며 “하지만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업에 벌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올해 17세 여고생이 된 두 사람은 이날 법정을 찾았으나 판결문을 다 듣지 못하고 드라마 수업을 받으러 학교로 돌아갔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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