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평화재단 국제학술회의]고이즈미 정권의 5년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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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고이즈미 정권의 5년: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와 현대일본학회 주최 국제학술대회에서 오노 고지 일본 나고야대 교수(왼쪽)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정치개혁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고이즈미 정권의 5년: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열린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와 현대일본학회 주최 국제학술대회에서 오노 고지 일본 나고야대 교수(왼쪽)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정치개혁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20일 일본 자민당 총재 경선으로 막을 내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집권 5년을 되돌아보고 미래 한일관계의 전망을 모색하는 국제학술대회가 8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이사장 남중구)·21세기평화연구소와 현대일본학회 주최,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열렸다. ‘고이즈미 정권의 5년: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는 다나카 아키히코(田中明彦) 도쿄(東京)대 국제관계학 교수를 비롯한 일본학자 3명과 최상용 고려대 교수 등 한국학자 15명이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리=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원인으로 한일 정상의 외교정책 실패를 꼽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일본의 차기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한일 관계를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이 많았다.

▽“한일 정상의 몰이해로 한일 관계 악화”=다나카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의 외교는 총리가 직접 대미 외교를 주도하고 실무진이 다른 외교를 주도하는 이중구조였다”며 “그 결과 대미 관계는 성공적이었던 데 반해 한국과 중국 관계는 큰 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각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외교에 대해 ‘대미 중시, 아시아 경시’라고 말하지만 ‘대미 중시, 아시아 무지’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특히 한중 외교의 경우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에서 보인 바와 같이 국내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 많았다”고 비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일 관계가 갈등 일변도로 빠진 것은 양국 정상 간의 관계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한일 민간 교류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면서 “반면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 차원에서 다루는 고이즈미 총리와 북한 중심으로 다루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대북 강경파임을 고려할 때 한일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 관계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군사대국화하는 일본, 동북아 신뢰 구축해야”=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도 이어졌다. 고이즈미 집권 5년 동안 미일동맹이 공고화되면서 일본이 국방과 안보정책에 질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

박영준 국방대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일본은 방어 위주의 전력에서 정보 수집력을 강화했으며 각각 육해공 자위대로 독립된 부대 운용 업무를 내년부터 통합막료회의로 일원화해 운용하는 등 다기능적이고 탄력적인 방위력을 갖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 전쟁을 포기하고 교전권을 부인하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은 물론 선제공격론과 핵무장론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일본이 군국주의화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나왔다.

김성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미 군사대국인 일본은 첨단 군사장비 확충과 정보 수집 능력의 확대로 더욱 군사대국화 돼 가고 있다”며 “최근 핵무장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대국화=군국주의화’라는 등식으로 보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는 “전후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방·안보 정책은 관료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둘을 결합해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영준 교수도 “군사적 성장만으로 군국주의화된다고 평가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면서 “그러나 일본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 동북아지역 내 신뢰 구축을 통해 공동안보태세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베 장관 차기총리 선출되면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사실상 일본의 차기 총리로 굳어진 아베 신조 시대의 한일 관계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전 외상이 부친인 아베 장관의 전공분야는 외교. 그러나 그가 거물 정치인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 ‘대북 강경론’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아베 시대의 한일 관계에 먹구름을 예고하고 있다.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대 교수는 “개혁 노선을 통해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던 고이즈미 총리와 달리 아베 장관은 대북 강경노선으로 입지를 다진 인물”이라며 “외교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아베 장관이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북한을 견제하는 정책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기무라 교수는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일본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북한이나 중국과 비슷하게 보는 시각이 늘고 있는 점도 아베 정권의 대북 강경 노선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아베 정권이 한국을 민주국가로 보느냐, 북한과 가까운 나라로 보느냐가 중요한 변수”라고 분석했다. 이어 박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 후반기는 독도 영유권 문제와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인한 한일 간에 감정적인 대립이 계속됐던 시기”라며 “아베 장관은 고이즈미 총리에 비해 과거사 인식이 훨씬 강경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외교행위에 중점을 둔 데 비해 아베 장관은 해야 할 일을 아는 현실주의자”라며 “크게 악화된 동아시아 외교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한일 관계 개선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盧대통령, 고이즈미 총리와 비교하면

“개혁노선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적 기반 없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고이즈미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비슷하다”(기무라 간 교수)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 사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를 비교하는 발언들이 잇달아 눈길을 끌었다.

학술대회 참석자들이 분석한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통점은 개혁노선으로 집권했으며 자신만의 정치 스타일을 굽히지 않는 ‘마이 웨이(My Way)’ 성향의 정치인이라는 것.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해 8월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의회 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단행하는 등 위기 때마다 승부수를 던져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모습이 노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분석이다.

외교 정책에서의 실수에도 공통점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는 ‘대미 관계만 좋아지면 다 좋아질 것’이라며 대미 관계에만 집중하면서 한국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기회비용을 치렀다”며 “대북 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를 편 노 대통령이 치른 기회비용과 비교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미 관계에만 집중한 고이즈미 총리처럼 노 대통령도 북한 중심으로 동북아 정책을 펴나가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것.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지지율이 40% 이하로 내려가지 않은 고이즈미 정권에 반해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은 최근 10%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기무라 교수는 “고이즈미 정권에는 아베 관방장관,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총무상 등 분야별 스타가 있는 반면 노 정권에는 대통령 외에 스타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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