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알코올 부족'

  • 입력 2006년 7월 28일 16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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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9시 모스크바 남서쪽 우달쪼바 거리의 24시간 소형 매점. 여직원 올가 드미트레브나(27) 씨가 보드카와 와인을 진열한 선반을 치우고 그 자리에 스낵을 올려놓고 있었다.

기자가 러시아산 스탄다르트 보드카 한 병을 달라고 했더니 "사장이 어떤 손님에게도 팔지 말라고 했다"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사장 허락 없이 술을 팔다가 적발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드카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술을 팔지 않는 것은 1985년 소비에트 연방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금주 캠페인 이후 거의 처음 있는 일. 당시는 보드카에 젖어 아예 일손을 놓은 시민들이 워낙 많아 정부 차원에서 술 판매를 단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알코올 부족' 현상은 결이 다르다. 주류 공급자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류 수입업자와 소매상들은 7월 1일부터 시행된 주류 판매 통합전산망 시스템(EGAIS)에 반발하면서 주류 판매 거부에 돌입했다.

이 시스템은 모든 술에 새 인지를 붙여 판매 현황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탈세를 막아 주류 행정을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 도입 목적이다.

하지만 주류 판매업자들은 "이 제도를 당장 없애지 않으면 올 9월부터는 밀주 외에 진짜 술을 찾기 힘들 것"이라며 미하일 프라드코프 러시아 총리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은 생소한 제도 도입으로 주류 시장이 고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술 판매 현황을 온라인으로 올리다가 잦은 컴퓨터 고장으로 데이터를 보내지 못한 가게들도 많다. 일부 음식점들은 손님들에게 술을 직접 가져와 마시라고 할 정도다. 지금도 가짜 술로 인한 피해자가 매년 4만 명이 넘는데 밀주 제조가 더욱 성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돈다.

독일의 한 컨설팅업체는 "메이저 주류 소매업자들이 이 제도 때문에 1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모스크바 소비자들의 시각은 싸늘하다. 레닌스키 프로스펙트에서 만난 표도르 시냐코프(21·모스크바대학 2학년) 씨는 "주류 판매업체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밥 그릇' 다툼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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