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희망의 꽃 피우다…지진피해 印尼커플 결혼식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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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걷는 길에는 주단 대신 판자 더미와 부서진 벽돌이 뒹굴고 있었다. 예식은 금이 쭉쭉 간 건물 앞에서 먼지가 뽀얗게 날리는 가운데 치러졌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주 반툴 시의 한 마을에서 지난달 29일 있었던 결혼식 풍경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커플은 원래 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7일 오전 10시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을 고대하던 두 사람 앞에는 끔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을 4시간 앞둔 오전 5시 54분 지진이 들이닥친 것.

신부 엔다흐 퍼완티 씨는 목욕을 하던 중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

그는 “그나마 수건을 챙길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결혼식 날 벌거벗고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며 “정말 악몽 같았다”고 말했다.

집 밖에 나와 마을을 둘러보니 폐허로 변해 있었다. 2000여 명이 살던 마을에서 54명이 숨지고 375명이 다친 것이었다. 신부의 친척 가운데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신부 측은 원래 900명을 초대해 큰 파티를 열 계획이었으나 애써 준비한 음식은 모두 쓰레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5개월이나 준비해 온 결혼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신랑과 먼지 낀 면사포를 쓴 신부의 결혼식은 하객의 박수 속에 조촐히 진행됐다. 첫날밤은 동네 어귀에 세워진 임시 텐트에서 보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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