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기현]중앙亞 동포들의 ‘끝나지 않은 은 유랑’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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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앙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다. 카라쿰(검은 사막)에 둘러싸인 낯선 땅, 폐쇄적인 정치 체제로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 불릴 정도로 외부인의 발걸음이 드문 나라다.

수도 아슈하바트의 가장 큰 재래시장인 ‘루스키 바자르’(러시아 시장)에 들렀다가 ‘카레이스키 샐러드’로 불리는 김치를 팔고 있는 40대 한인동포(고려인) 아주머니 잔나 이 씨를 만났다. 중앙아시아에 고려인이 많이 살고 있지만 이 외딴 곳에서까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씨 역시 반가워하며 집으로 초대했다.

다른 취재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찾아간 집에는 남편 올레크 백 씨와 외동딸 타티아나 씨, 어린 외손자 등 네 식구가 기자를 맞았다. 가전제품을 빠짐없이 갖춰 놓은 집안을 둘러보며 ‘사는 걱정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양배추와 당근, 가지, 고추로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 시장 바닥에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집도 몇 채 사고 제법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에 흐뭇했다. 하지만 서울로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아들만 안고 돌아온 딸의 장래와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게 늘 불안하다는 걱정을 들으니 가슴이 무거워졌다.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된 후 중앙아시아 곳곳에서는 내전과 정변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소수 민족인 고려인들은 정든 집을 버리고 이웃 나라나 러시아로 피해야 했다. 20세기 초에는 나라를 빼앗기고 러시아 극동으로 건너가 간신히 자리 잡는가 했더니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다시 낯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고, 옛 소련 해체 후에는 늘 ‘떠날 준비’를 하며 살고 있다. 이들의 기나긴 ‘유랑의 역사’는 언제 끝이 나려나.

이런 딱한 사연은 옛 소련 지역 어디에서나 보고 듣는 것이다. 올해 초 키르기스스탄에서 민주화 시민혁명인 ‘레몬혁명’이 성공해 전 세계가 박수를 보냈지만 우리 동포들은 그 와중에서도 피해를 봤다.

물론 곳곳에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성공한 고려인 동포들을 만나 마음이 벅차오른 적도 많다. 취재 때문에 들어간 오지에서 우연히 만난 동포들에게 도움을 받은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2000년 체첸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체첸 접경의 소도시 모즈도크에 갔을 때에는 미국 시민권자인 한인 목사가 세운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고려인 동포들의 도움을 받았다. 함께 갔던 서방 외신 기자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 코리안이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미안함이 있다. 시베리아의 과학 도시인 톰스크에 갔을 때 깨끗한 시내 풍경에서 주변 도시와는 다른 경제적인 여유가 느껴졌다. 알고 보니 주민 중 다수인 독일계 젊은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번 돈을 고향에 남은 부모와 친지에게 보내는 것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옛 소련 붕괴 후 독일과 이스라엘은 소련 지역에 살던 독일인과 유대인을 본인 희망에 따라 조건 없이 귀국시켰다. 중국의 조선족과 고려인들의 귀환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물론 나름대로 논리는 있었다. 러시아와 중국 등 당사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동포들이 현지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이 자신과 고국 모두에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피만 나눴을 뿐 수십 년 동안 왕래도 없던 ‘못사는 형제’가 갑자기 나타난 데 대한 당혹감은 혹시 없었을까. 옛 소련 전역의 50만 동포는 고국의 지원 없이도 꿋꿋하게 살아왔다.

헤어지며 이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다만 힘들 때마다 고국이 우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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