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고이즈미의 ‘작은 정부’가 환영받는 이유

  •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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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후 26일 국회에서 시정 연설을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원고는 간결했다.

연설 시간은 중의원 14분, 참의원 10분. 총리의 국회 연설로는 19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짧았다.

관심의 초점인 외교 문제에 대해선 “인접국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이좋게 지내겠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단문으로 일관한 이 짧은 연설에 일본 관가는 술렁댔다. ‘대통령 같은 총리’의 연설이어서가 아니다. ‘작은 정부’의 실현이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단행해 정부의 규모를 대담하게 줄여 나가겠다.”

이 대목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톤을 높였다. 총선 쟁점인 우정 민영화 외에 핵심 과제로 공무원 인건비 삭감과 정부계 금융기관의 통폐합을 내걸었다. 총리실 측은 ‘대담하게’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4년간 국가공무원 2만7681명을 줄이는 ‘공무원 정원 감축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옷을 벗는 5000여 명을 포함하면 현 인원 33만 명 중 10%가 줄어드는 셈이다. 감축계획에는 국가공무원의 총인건비(약 5조4000억 엔)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0년 안에 절반으로 억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판론자들은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에 대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고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에 둔감하다는 일본 사회도 소리 없이 변하고 있다.

1999년 3232곳에 이르던 일본의 시정촌(市町村) 등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2300여 곳으로 줄었다.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통폐합을 하면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중앙정부의 ‘당근 정책’이 여론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및 도로공단과 결탁한 ‘도로족(族)’ 의원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은 도로공단 민영화도 10월 1일 예정대로 시행된다.

한국에선 자민당의 우경화를 걱정스럽게 지켜보지만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이미 60%를 넘어섰다. 피부에 와 닿는 개혁만이 지지율을 높이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점을 고이즈미 총리는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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