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가는 은퇴자들]일본서 동남아로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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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정년퇴직한 전직 공무원 야마키 가즈노리(八卷一憲·62) 씨는 아내(60), 모친(89)과 함께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400평이 넘는 정원에는 개와 고양이 3마리가 뛰어다니고, 집안일은 현지인 가정부가 책임진다.

야마키 씨의 부인은 “남편이 태국에서 살자고 했을 때 ‘가사노동에서 해방된다면 기꺼이 따르겠다’고 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만족했다.

널찍한 방이 다섯 개나 되지만 월세는 6만5000엔(약 65만 원). 이 돈으로 도쿄(東京) 시내에서는 허름한 아파트도 구하기 힘들다.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야마키 씨처럼 연금으로 생활하는 정년퇴직 부부가 치앙마이 일대에만 100쌍 이상 살고 있어 외국 생활에 따른 고립감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거품 경기로 일본 전체가 흥청대던 1990년대 초, 일본 정부는 노년층의 이민 프로그램인 ‘실버 콜롬비아 계획’을 만들어 해외이주를 장려했다.

당시 가장 인기 높던 후보지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과 하와이. 그러나 거품이 꺼지면서 정년퇴직자들의 관심은 동남아시아로 쏠리기 시작했다. 한 50대 남성은 “일본 대도시의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월 20만∼30만 엔의 연금으로 품위 있는 노후를 설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런 점에서 동남아는 매력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의 경우 수도 마닐라 근교에 실버타운인 ‘일본인 건강촌’이 여러 곳 들어서 있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현지인 스태프는 일본어가 능숙하고 일본 문화에 대해 기본 소양을 갖춘 이들이어서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 이들은 다양한 입주 플랜을 마련해 일본인 입주자를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국가별로 특화된 해외이주 알선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전문가들은 동남아를 택하는 일본인이 많은 이유로 △일본에 우호적인 분위기 △싼 물가 △따뜻한 기후 △일본과의 직항로 개설 △고령자를 존중하는 전통 △식생활의 유사성 △비슷한 시차 등을 꼽고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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