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도미노’ 시작되나…이집트, 대통령 직선제로

  • 입력 2005년 2월 2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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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王政)과 신정(神政)이 일반적이었던 중동에 ‘민주 선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민주적인 선거가 이루어진 데 이어 24년간 장기집권 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26일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LA타임스는 “이집트에서 1952년 왕정이 무너진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처음으로 실시될 수 있다”며 “직선제는 수십 년간의 억압 정치를 끝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집트 야당은 ‘립 서비스’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집트식 대통령 직선제=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를 통해 “정당에 대통령 후보를 낼 기회를 주고 국민이 직접 비밀투표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라고 의회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집트의 대통령 선출 방식은 의회(의원 수는 총 454명)가 먼저 단일 후보를 지명하고 이어 국민이 찬반 투표로 대통령을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집권당인 국민민주당(NDP)이 의석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제안하긴 했지만 조건이 달려 있다. 대통령 후보는 반드시 정당에 소속해 있어야 하고, 출마 전에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

NDP가 다른 후보의 출마 승인을 봉쇄하거나 정부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을 구속해 당적을 박탈해 버리면 무바라크 대통령의 라이벌은 현격히 줄어든다.

▽자의(自意)보다는 타의(他意)=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달만 해도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쓸모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왜 한 달 만에 입장을 바꿨을까.

AFP통신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 △무바라크 대통령의 5선 연임을 반대하는 야당 세력의 반발에 밀려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분석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이집트 국내의 저항은 심각하다. 이달 들어서만 두 번이나 ‘무바라크 퇴진’과 ‘권력세습 반대’를 주장하는 군중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키파야(이제 충분하다)”를 외치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규탄했다.

이달 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면서 대외적으로 ‘중동 평화 전도사’ 이미지를 굳힌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번 개정안으로 국내 표심 끌어안기에 나섰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실시될까=LA타임스는 “만약 직선제가 실시되면 이라크뿐 아니라 중동 전체에 민주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이 제시한 ‘중동 민주화’ 계획과도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과연 정말 실시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야당 지도자들은 “1인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중동 정치의 특성상 이번 직선제 개헌도 ‘공수표’에 그치기 쉽다”고 지적했다.

LA타임스는 “헌법 조항 1개를 수정해 이집트 전체가 민주화되기는 어렵다”며 “이집트는 끝없는 대통령 연임, 언론통제와 검열, 정당 창당의 어려움 등 민주화 발목을 잡는 요소가 너무 많다”고 분석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美 민주화압력, 무바라크를 흔들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야당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격 수용한다고 발표한 이면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민주화 압력이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발표 시점은 다음 주로 예정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이집트 방문 연기를 통보받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라이스 장관은 3월 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정치·안보·경제개혁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뒤 이집트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집트는 미국의 전통적 아랍 우방국이자 이스라엘에 이어 미국의 대외원조 규모 2위인 나라.

미 국무부는 라이스 장관의 이집트 방문 연기 사유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측통들은 △지난해 창당한 이집트 야당 알 가드의 아이만 누르 대표에 대한 구금조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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