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사람 감염’ 또 비상

  • 입력 2005년 2월 1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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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이후 베트남에서 '가금류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조류독감 사망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독감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풍토병으로 굳어져 근절될 수 없다고 판정했다. 조류독감 희생자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곧 조류독감 바이러스로부터 사람에게 치명적인 새 바이러스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이 겪어보지 못해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는 교통의 발달로 급속하게 퍼지면서 대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제3차 내습=지난달 30일 베트남 호찌민시 제1소아과병원에서 10세 베트남 소녀가 조류독감으로 숨졌다. 지난해 12월 중순 재발한 조류독감으로 이 10세 소녀를 포함해 모두 12명의 현지인이 희생됐다.

지난달 29일에는 호찌민시의 한 병원에서 고열과 폐기능 악화 등 조류독감 유사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캄보디아 여성 한 명이 숨졌다. 이 여성이 조류독감에 감염됐다면 지난달 12월 재발한 조류독감이 베트남 이외 국가에서 첫 희생자를 낸 것이다.

최근 아시아지역을 강타한 조류독감은 2003년 12월 첫 발생이 보고 됐다. 제1차 조류독감은 2004년 1월로 접어들면서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 중국 등 8개국으로 퍼져나갔다. 24명이 희생됐고 가금류 1억2000만 마리 이상이 도살당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조류독감은 2004년 7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베트남과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제2차 조류독감이 확산됐다. 이번에는 말레이시아도 포함됐다. 8명이 숨졌으며 가금류 100만 마리 정도가 도살됐다.

WHO는 1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3차 조류독감 희생자는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이었다"며 "이들은 조류독감에 걸리기 전에는 모두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팬데믹 우려=2003년 12월 이후 아시아지역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 유형은 H5N1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중 H5와 H7의 두 가지 유형의 발생을 가장 우려한다. 다른 유형에 비해 변이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WHO는 H5N1 바이러스가 재발을 거듭하면서 감염 대상도 늘어나고 생존력도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가금류만 걸렸으나 쥐와 고양이 호랑이 등 이전에는 감염되지 않았던 포유류도 자연 상태 또는 실험실에서 감염되는 것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 WHO는 지난해의 H5N1 바이러스가 1997, 2003년 홍콩에서 발생한 같은 바이러스보다 크게 바뀌었다고 결론지었다. 이 바이러스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맞교환해 새 바이러스로 바뀌면 팬데믹(대륙간 전염병)을 유발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이미 2004년 1월 제1차 발생 때 베트남에서 H5N1 바이러스가 사람끼리 감염된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태국에서 H5N1 바이러스가 딸에서 어머니로 옮아갔다는 점을 태국 연구진이 확인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제한적인 감염으로 끝났다.

100만 명을 희생시킨 1957~58년 '아시아 독감'은 조류독감과 사람 독감 바이러스가 결합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8~19년 2000만 명을 숨지게 한 '스페인 독감'은 △어린이 집중 감염 △바이러스성 폐렴 등 H5N1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WHO는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H5N1 바이러스는 새로운 대륙간 전염병으로 등장할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대응 부심=베트남은 23~25일 호찌민시에서 태국과 캄보디아 등 조류독감 발생국가와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조류독감 정상회의'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난 1년간 실행됐던 조류독감 확산 억제대책을 평가하고 H5N1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하는데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류독감이 아시아지역에서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일부 아시아 국가의 외진 농촌지역은 감시망이 미치지 못하는데다 건강한 오리가 배설물을 통해 바이러스를 옮기는 상황이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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