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美 “亞 통화가치 올려라”

  • 입력 2005년 1월 18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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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국제 외환시장이 새해 들어 요동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간부들이 “아시아 통화가 저평가됐다”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일본 엔화는 물론 한국 원화, 싱가포르 달러, 태국 밧화 등 동아시아 국가의 화폐가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외환당국은 선진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다음달 4,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점을 의식해 시장개입에 나서지 못한 채 속만 태우는 모습이다.

외신들은 “이번엔 미국이 유럽 편을 들 태세여서 아시아 통화가 시련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유럽발(發) 환율전쟁’인가=엔화 강세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ECB 간부들의 발언 공세.

오트마 이싱 ECB 이사는 11일 “문제의 본질은 중국 등 아시아에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가 “유로화 강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가세했고, 미국 뉴욕연방은행 당국자도 “유연성을 결여한 일부 국가의 환율제도는 세계 경제의 위험요인”이라며 유럽에 힘을 실어 줬다.

특정국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고정환율제를 고수하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엔화 등 다른 아시아 통화가 타깃이 됐다.

엔화는 14일부터 이번 주에 걸쳐 뉴욕, 런던,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101엔대에서 거래돼 2000년 1월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반면 작년 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던 유로화는 소폭이나마 하락세로 돌아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결국 위안화를 절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면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통화가 먼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유럽 공조에 밀리는 아시아=유럽이 아시아 통화를 겨냥해 구두개입에 나선 데는 나름대로 절박한 사정이 있다.

2002년 초부터 작년 말까지 유로화는 달러에 대해 50% 상승한 반면 엔화는 시장개입 덕택에 상승 폭이 25%에 그쳤다. 유럽 측은 “유럽 경제가 미국과 일본보다 안 좋은데 통화가치만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불만이다.

일각에서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럽의 발언력이 높아진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화해 분위기를 꼽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의 첫 해외 방문지로 유럽을 택하는 등 유럽과의 관계개선에 의욕을 보이면서 환율 분야에서도 미-유럽 공조가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됐다는 것.

다음 달 G7 회의에는 중국도 참가할 예정이어서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간의 환율 공방전이 치열할 전망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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