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쓰나미 유족’의 눈물

  • 입력 2005년 1월 5일 18시 32분


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태국에서 지진해일(쓰나미) 재앙 현장을 취재하면서 시신을 볼 때마다 부질없는 의문을 품었다. 시신이 한결같이 뭔가를 말하거나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절규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인 가족 4명이 피피 섬으로 놀러 왔다가 아빠와 작은 아들은 살고 엄마와 큰아들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엄마는 좀 더 힘 있는 큰아들과 본능적으로 짝을 이뤄 달아났지만 무자비하게 밀려든 파도에 모자의 힘은 보잘것없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은 나머지 가족의 무사를 빌었을 터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인 신혼여행에서 삶을 마감한 부부는 또 얼마나 하늘을 원망했을까. 결혼식 날 신랑은 좋은 신부를 얻어 ‘만세’를 삼창했고, 신부는 한 살 연하의 신랑을 얻어 ‘땡잡았다’를 세 번 외쳤다고 한다.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이어서 온갖 신혼살림을 챙겨 주었는데 결혼식 모습이 마지막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오열하던 유가족을 보며 기자도 같이 울었다.

열흘이 지났다. 눈물과 분노로 괴로워하던 가족들은 점차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카오락에서 실종된 3명의 유가족들은 5일 사고 현장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귀국했다.

현장에 파견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청 감식원들의 활약은 참으로 컸다. 이들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만 있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인인지를 확인했다. 닷새 동안 한국인 시신 4구를 확인했다.

끄라비에서 태국 경찰 몰래 시신의 살점을 떼어 냈다며 씩 웃던 경찰청 과학수사과 박희찬 경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시신은 DNA 검사를 통해 한국인으로 판명됐다.

합동분향소를 차리고 시신이 화장되기까지 온갖 궂은일을 도맡은 여행자협회, 시신 10여 구를 찾아낸 119 구조대원들, 푸껫의 현장본부를 밤새워 지킨 한국대사관 관계자들…. 이들이 있었기에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었다.

5일 현재 한국인 사망자는 12명, 실종자는 8명이다. 소재 미확인도 168명이다. 망자에게는 묵념을, 유가족에게는 위로의 인사를 드린다. 태국에서 합장.

박형준 국제부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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