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지진해일]“하늘에 계신 부모님, 막내 좀 제발…”

  • 입력 2005년 1월 3일 0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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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가수 고(故) 고복수 황금심 씨의 막내아들로 태국에서 실종된 고흥선 씨(오른쪽)와 약혼녀 이근순 씨. 사진 제공 조선일보
원로가수 고(故) 고복수 황금심 씨의 막내아들로 태국에서 실종된 고흥선 씨(오른쪽)와 약혼녀 이근순 씨. 사진 제공 조선일보
“어, 너 영준이 아냐. 임마,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2일 태국 팡아 주(州) 카오락의 시신 안치소. 시신들의 지문을 ‘감식’하고 있던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박희찬 경사는 안치소 입구에 서있는 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바로 자신의 죽마고우인 고영준(50) 씨였다.

고 씨는 “임마, 병준이가 카오락에 놀러 와서 실종됐잖아. 어제 뉴스에서 사망소식이 나와 급히 달려왔어”라고 말했다.

끄라비에 있다 한국인 여권 2장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이곳으로 달려온 박 경사는 순간 자신이 찾고 있는 시신이 친구 고 씨의 동생 흥선 씨(41)인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병준’이라고 불러 흥선이라는 이름을 몰라본 것이었다. 영준, 흥선 씨 형제는 1950, 60년대 ‘황성옛터’ ‘알뜰한 당신’ 등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원로가수 고(故) 고복수, 황금심 씨 부부의 맏아들과 셋째아들.

“동생 죽은 걸 차마 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난 시신 안치소에 들어가지 않았어.”(고 씨)

“아니, 난 서울에서 실종됐다고 접수된 사람들 지문은 다 채취해 왔는데, 사진은 없었어. 더구나 이름이 고흥선으로 돼 있었잖아. 그런데 흥선이가 병준이라니….”(박 경사)

한국인 시신 확인을 위해 태국에 파견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박희찬 경사(왼쪽)가 2일 카오락 시신 안치소에서 만난 친구 고영준 씨를 위로하고 있다. 카오락=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박 경사는 지문 자료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했다. “아, 맞네. 우리가 서울 상계동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주민등록 뒷번호가 비슷하잖아.” 박 경사는 울컥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지진해일이 절친한 친구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고 자신은 그것도 모른 채 망자의 지문을 뜨러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영준이 이놈, 제수씨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니 이제 동생마저 잃다니….”

흥선 씨는 지난달 19일 팬으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10세 연하의 이근순 씨(31)와 친구 등 5명과 함께 푸껫으로 단체관광을 왔다. 당초 24일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카오락에서 며칠 더 지낸 뒤 27일 귀국하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형 영준 씨는 2001년에 아내가 암으로,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잇따라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영준 씨는 가수로, 동생은 ‘여인천하’ ‘다모’ 등 유명 드라마 음악 작곡가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카오락(태국)=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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