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태국 팡아 주(州) 카오락의 시신 안치소. 시신들의 지문을 ‘감식’하고 있던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박희찬 경사는 안치소 입구에 서있는 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바로 자신의 죽마고우인 고영준(50) 씨였다.
고 씨는 “임마, 병준이가 카오락에 놀러 와서 실종됐잖아. 어제 뉴스에서 사망소식이 나와 급히 달려왔어”라고 말했다.
끄라비에 있다 한국인 여권 2장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이곳으로 달려온 박 경사는 순간 자신이 찾고 있는 시신이 친구 고 씨의 동생 흥선 씨(41)인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병준’이라고 불러 흥선이라는 이름을 몰라본 것이었다. 영준, 흥선 씨 형제는 1950, 60년대 ‘황성옛터’ ‘알뜰한 당신’ 등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원로가수 고(故) 고복수, 황금심 씨 부부의 맏아들과 셋째아들.
“동생 죽은 걸 차마 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난 시신 안치소에 들어가지 않았어.”(고 씨)
“아니, 난 서울에서 실종됐다고 접수된 사람들 지문은 다 채취해 왔는데, 사진은 없었어. 더구나 이름이 고흥선으로 돼 있었잖아. 그런데 흥선이가 병준이라니….”(박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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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럴 수가 있나. 영준이 이놈, 제수씨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니 이제 동생마저 잃다니….”
흥선 씨는 지난달 19일 팬으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10세 연하의 이근순 씨(31)와 친구 등 5명과 함께 푸껫으로 단체관광을 왔다. 당초 24일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카오락에서 며칠 더 지낸 뒤 27일 귀국하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형 영준 씨는 2001년에 아내가 암으로,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잇따라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영준 씨는 가수로, 동생은 ‘여인천하’ ‘다모’ 등 유명 드라마 음악 작곡가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카오락(태국)=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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